[RESEARCH] 외계 문명과 인류의 비밀 8편, 9편 BY 파토

■  외계 문명과 인류의 비밀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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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문명과 인류의 비밀 Chapter 8

 

아시는 대로 본 우원 한달 간 편집장짓을 하는 바람에 본 시리즈를 포함해 연재물 집필이 중단됐었다.

이제 집어 쳤으니 다시 시작한다.

연재 재개를 기념해 먼가 멋진 말을 해 보려 했는데 안 떠오른다. 그냥 가자..

지금까지의 내용 초간단 요약.

l  옛날옛적 태양계에는 지구와 행성 Z, 화성 세 개의 문명이 있었다.

l  행성 Z와 화성은 열라 발달했지만 사이가 안좋았고 지구는 중간에 꼽사리 끼어 Z와 교류하고 있었다.

l  둘 사이에 거대한 데쓰스타를 동원한 우주전쟁이 일어나 두 별은 동시에 멸망했다.

l  와중에 지구는 새우등 터져 대홍수와 지각변종으로 기존의 초고대문명과 식민지 문명이 송두리째 붕괴되고 말았다.

너무 단순화한 느낌도 있지만 대략 이런 스토리다. 암튼 행성 Z와 화성은 이미 멸망해 버렸으니 여기서부터 무대는 지구로 옮겨질 수 밖에 없다. 고로 이제부터 몰락한 지구의 기억과 그 재건에 관련된 이야기가 이어지게 된다.

그러나 그리로 본격 넘어가기 전에 몇 가지 정리 좀 하자.

행성 Z와 화성은 정녕 완전히 사라진 것일까…? 물리적으론 그렇다. 그러나 행성 Z와 화성의 주민들도 그 과정에서 완전하게 멸망한 걸까?

그렇지 않다. 먼저 지금의 이야기 전개 과정으로 보면 우리 지구인 자체에 Z인의 피가 섞여 있다. 7편에서의 네안데르탈인과 크로마뇽인 관련 이야기가 거기에 해당한다. 한편 그렇게 섞이지 않고 혈통적 ‘순수성’을 지킨 소수의 외계인 집단이 지구상 어딘가에 존재할지도 모른다. 그들은 우리와 섞여 살아왔을 수도 있고, 나름 격리된 공간에서 눈에 띄지 않게 살아왔을 수도 있다.

특정기사 및 인물과 관계없음

또 한가지는 가능성은 두 행성이 파괴되던 순간 거기 있지 않던 Z와 화성인들이 상당히 있을 거라는 점이다. 지난 편 외전 소설에도 암시되어 있지만 우주전쟁을 치르려면 먼 거리에서의 장거리 무기만으로는 어렵다. 지상군도 투입이 되었을 거고 우주함대가 두 행성 사이의 공간에 진주해 있었을 것이다. 그 경우 함대의 승조원들은 행성들이 폭발하는 와중에도 아무 피해 없이 생존했을 것이 분명하다. 물론 정신적 타격은 엄청났겠지만.

또 다른 안전지대는 역설적으로 두 대의 데쓰스타. 이 거대한 건조물들이 완전한 무인 자동 기계였을 가능성은 전무하다고 봤을 때, 결국 무기이자 동시에 초거대 우주선으로 작동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에 탑승해 있던 사람들이 있다. 크기와 규모로 보아 최소한 수천 명 이상, 많게는 수십만 명에 달했을지도 모른다.

화성의 데쓰스타인 이아페투스는 이 스토리에 따르면 Z 폭발 후 토성 궤도까지 튕겨가게 되니, 내부에 승무원이나 군대가 있었다 한들 엄청난 진동과 충격, 가속도 속에서 살아 남았을지는 의심스럽다. 게다가 원래 이 넘의 임무는 자폭머신이었다. 그러나 화성 괴멸시 화성군 함대가 우주 공간에 주둔해 있었다면, 모성을 잃은 그들은 결국 파괴되지 않은 이 거대한 인공위성으로 재 집결했을 것이다.

Z의 데쓰스타인 달은 말할 것도 없다. 손상을 입은 바도 없고 크기는 이아페투스보다 훨씬 더 크고 게다가 식민지인 지구 궤도 위에 있다. 이런 조건이라면 내부에 수백만 명이 살고 있었다고 해도 그리 이상할 게 없는 일이다.

자, 그렇다면 화성과 Z의 이 ‘잔당’들은 과연 어떻게 됐을까?

먼저 Z부터 생각해보자. 선방으로 화성을 괴멸시킨 달의 Z 인들은 승리의 기쁨도 잠시, 자신들의 모성이 더욱 처참하게 소멸된 사실을 알게 된다. 그와 동시에 태양계 내부의 중력 균형이 흔들리면서 지구 역시 대재앙을 맞는다.

이 대홍수는 지난 번에 언급했듯 수십 년간 지속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 이유는 홍수가 폭우 같은 기상 현상에 의한 국지적인 것이 아니라 지구의 자전과 공전, 그리고 지각변동에 따른 바다의 ‘육지 집어삼킴’ 현상이었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지구상에 있던 동족들은 대부분 물에 휩쓸려 죽었고 쌓아놓은 식민지 문명도 모조리 붕괴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들이 안전한 달을 떠나 서둘러 원시시대로 돌아간 지구에 내려갈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그럼 화성인들은? 이아페투스에 재집결한 화성군의 잔존세력은 고장난 위성을 수리하면서 절치부심 재기복수를 노렸을 것이다. 그러나 전혀 손상되지 않고 크기도 훨씬 큰 달에 살아남아 있던 Z인들에 비해 숫적으로 훨씬 열세고, 또 춥고 먼 외행성계로 밀려나 있다. 그리고 역시나 재앙에 빠져 있는 지구를 욕심 낼 이유도 없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 지구와 외계와의 연계 고리는 최소 수백에서 수천 년 가까이 끊어져 있었을 거다. 그 상태에서 지구는 물이 빠지고 다시 살만한 곳이 되었겠지만 살아남은 인구는 극소수고, 문명과 리더십이 붕괴한 무주공산 상태로 수천 년이 흘러 갔다.

허나 세월이 지나면서 결국 문명은 다시 재건된다…

이집트 기자의 3대 피라미드와 스핑크스에 대해서는 수많은 설들이 난무하고, 그 중에는 억측도 많다. 최악은 피라미드의 외부와 내부의 길이 넓이 등 수치 속에 인류 멸망까지의 전 역사가 담겨 있다는 건데, 가상 SF 엔터테인먼트 음모론을 쓰는 입장에서도 이런 건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러나 무시하기 어려운 미스터리한 팩트들도 존재하는데, 바로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l  주류 지질학자 로버트 쇼크는 스핑크스의 석회암 침식도를 기초로 스핑크스가 기원전 7천년 전 이전, 즉 지금부터 9천년 이전에 만들어졌다는 주장을 내세웠고 지질학계의 공감대를 얻어냈다.

l  기원전 2500년, 4왕조 시대에 완공된 기자의 3대 피라미드는 10,500년 전 오리온좌의 배치에 맞춰 위치를 정한 것이다.

l  이집트의 피라미드 건설 기술은 3대 피라미드 건설 후 더욱 발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퇴보했다.

l  3대 피라미드 중 가장 큰 쿠푸왕의 피라미드는 BC25세기부터 AD19세기에 이르기까지 4500년동안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

이런 사실들을 종합해 보면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먼저 저 스핑크스는 아마도 대재앙이 일어나기 전에 만들어진 것이다. 즉 화성과 Z의 멸망 이전에 세워진 거란 뜻이다. 최소 9천년이라는 검사 결과는 얼마든지 2천5백 년 정도 는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그리고 석회암 덩어리에 새겨진 수많은 자국들은 쇼크 박사에 따르면 오랜 빗물에 의한 것이라지만, 홍수의 흔적인지도 모른다.

즉, 행성 Z와 화성의 멸망 이전에 지구에 살던 사람들은(그들의 정체가 뭐던 간에) 기자 지역에 스핑크스를 세우고 오리온좌의 모양을 본따 대 피라미드를 위한 3개의 기단부를 만든 거다. 그러나 예기치 않은 파국이 일어나는 바람에 그들은 결코 피라미드를 완성할 수 없었다. 그리고는 수천 년의 장구한 세월이 꿈처럼 흘러갔다.

왼쪽 끝부터 중국 장안, 이집트 기자, 멕시코의 마야, 그리고 오리온.

이 범지구적 유사성을 단지 우연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이집트 땅에 다시 문명이 수립되기 시작한 것이 언제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상형문자인 히에로클리프는 1왕조때인 기원전 3100년 전부터 이미 완성된 상태로 존재했다. 이때 이집트 특유의 회화 형식도 이미 완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정사에 따르면 그 이전 이집트는 신석기 시대로 이런 조직적인 문명의 발달은 불가능했어야 한다. 또한, 히에로클리프나 회화 형식의 중간 발전 단계, 초기 단계 같은 것이 전혀 발견되지 않고 있다. 즉 이집트 문명은 매우 빠른 시간 동안에 급속도로 만들어지고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BC 1600년경의 은허 유적지에서 출토된 갑골문.

이후의 한자와는 전혀 다른 원시적인 형태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으며 이것이 정상이다.

 

BC 3100년 경 이집트 제1왕조의 암벽화.

몸통은 정면, 머리는 측면으로 향하는 인물의

자세나 파라오의 머리를 장식하는 뱀, 매와

자칼 등 이후 3천년간 지속된 회화 형식이

이미 이때부터 완성되어 있다…

그리고 기자의 대 피라미드들이 건립된 것은 이로부터 불과 600년 후다. 급속히 발전하는 현대 기계문명 시대도 아니고, 태양신 ‘레’니 호루스니 이시스니 하던 신화 시대에서 역사 시대로 돌입한지 불과 6세기만에 이집트의 청동기인들은, 향후 45세기 동안 세계 최대의 건물로 군림하게 될 거대한 피라미드들을 말 그대로 무에서부터 창조해 냈다는 소리다.

가능한 일인가…?

그리고 이집트의 피라미드 건립 기술은 이때를 정점으로 점점 퇴보한다. 이후의 피라미드들은 규모도 작아지고 내외벽도 엉성하며, 심지어 건설 중에 붕괴되기도 했다. 이집트의 수천 년 역사 속에서 기자의 세 피라미드 이후 다시는 그런 대작을 건설해 내지 못했다는 사실은,  전반적인 기술 수준이 발전이 아닌 퇴보의 방향이었다는 사실을 명백히 보여준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이는 이집트인들이 이때 만든 문명에 ‘지속가능성’ 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들이 자생적인 문명을 쌓아나간 것이 아니라 기록과 유적의 우연한 발견 같은 과거의 기억에 전적으로 의존했기 때문일 거다. 즉 이집트인들은 사라진 문명의 기술적, 사회적 정수를 대략 흉내 내고 응용할망정 제대로 발전시켜 나갈 수는 없었던 거다.

혹은, 이집트의 신화 시대에 행성 Z나 화성의 종족들이 내려와 잠시 교류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들이 떠난 후 긴 세월이 흐르자 기술은 잊혀지고 문명은 점점 쇠퇴해 간 것 아닐까. 그 경우 이집트 신화 속의 많은 신들은 바로 이들을 지칭하는 것임에 분명하다.  

그리고 이건 단지 필자의 근거 없는 상상만은 아니다. 대재앙 이전과 이후 지구인들이 외계인들과 교류했다는 증거들은 암벽화 등의 형태로 상당히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아래는 필자가 과거 노매드 관광청에 썼던 관련 글의 일부다. 이 주제와 밀접하게 관련된 부분이니 한번 읽어들 보자.

 

 

위의 사진은 기원전 6천년 경, 즉 지금으로부터 8천년 전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사하라 사막의 타실리 지방에서 발견된 암벽화다. 이 시대는 소위 석기시대로서 돌도끼, 돌칼 등을 사용하던 시점이며 따라서 문자는 물론, 세련된 현대적 형태의 인공물이나 기계, 의복은 존재하지 않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위에 그려진 인물은 분명 일종의 투구, 혹은 헬멧을 착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게다가 자세히 보면 머리와 몸을 잇는 목 부분이 상당히 정교하게 밀폐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으며 헬멧의 외양 역시 일반적인 머리카락의 형태와는 전혀 다른 반복 무늬의 패턴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보다 중요한 것은 가슴 부분의 세로 주름인데, 이는 당시에 착용하던 털가죽이나 거친 옷감 류에서는 절대 나타날 수 없는 것으로 비단 같이 아주 얇은 실로 정교하게 짜여진 천, 혹은 비닐과 같은 상당히 매끈매끈한 재질로 만들어졌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또한 의복의 디자인도 현대의 우주복과 비슷한 일종의 ‘오버올’ 스타일로, 한마디로 우리가 알고 있는 석기시대와는 이미지상 전혀 맞지 않는 것이다.

한편 우측 상단과 좌측에는 하늘을 날고 있는 듯 한 원반 형태의 물체도 나타나 있다. 이런 것이 만약 그것만 따로 그려져 있었다면 소위 원시적인 ‘환칠’로 생각될 수 있지만 중간의 인물로 인해 자연스럽게 UFO 를 연상하게 만들고 있다. 또 잘 보이지는 않지만 좌측 구석으로 가면 또 다른 사람의 형상이 일부 보이는데, 이는 중앙의 인물에 비해 무척 생략되어 아이들의 그림처럼 단순한 선으로만 묘사되어 있다. 이 그림이 자기 자신들이라면 중앙의 인물은 분명 늘 보는 주변 사람과는 판이하게 다른 어떤 존재를 특별히 자세히 묘사하려 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이런 이상한 그림은 많다. 아래를 보자.

 

 

 

이 동굴 벽화는 약 1만 2천년 전의 것으로 이탈리아의 발 카모니카에 있다. 역시나 헬멧을 쓴 듯한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때는 구석기 시대로 아직 돌을 숫돌에 갈아 쓴다는 개념도 없던 시절인데, 생활을 위해 사용하던 도구들은 깨뜨려서 뾰족하게 만든 돌이나 동물의 뼈, 나무 등이 주종이었다.

돌이나 뼈를 가는 기술이 없다는 것은 다시 말해 뭔가를 둥그렇고 부드럽게 연마할 수 없다는 말과 같다. 그럼에도 이 인물들이 쓰고 있는 헬멧은 매우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곡선을 보여주고 있으며, 대단히 정교한 많은 돌기들을 달고 있을 뿐 아니라 어찌 보면 빛을 발하고 있는 듯도 하다. 손에도 정체를 알 수 없는 길쭉한 도구 같은 것을 들고 있는데 전반적으로 구석기 시대와 이 그림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이런 독특한 머리 형태를 가진 인물상이 결코 이들만의 작품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위 사진은 이탈리아에서 수만 킬로미터 떨어진 남미 페루의 토로 무테로에 있는 암벽화로, 위의 그림과 비슷한 시기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림 양식의 차이는 있지만 빛나는 헬멧을 쓴 듯한 인물의 머리 부분에 대한 묘사는 사실상 위와 동일하다.

이 그림에서 또한 눈 여겨 봐야 할 점은 왼쪽 아래의, 중앙의 인물이 빠져 나오고 있는 듯이 보이는 정체 불명의 물체다. 아폴로의 착륙선을 연상시키는 이 인공적인 물체는 1만 2천년 전 구석기시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기계’의 이미지를 강하게 풍기고 있다. 또한 주인공에 비해 우측의 주변 사람들의 모습은 매우 단순화되어 익숙한 스스로의 모습을 간략하게 묘사한 것으로 추측되며, 얼핏 중앙의 인물을 보고 놀라거나 도망가거나 혹은 환호하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한편 위 그림은 오스트레일리아의 킴벌리에서 발견된 것으로 약 5천년 전의 것이다. 역시 양식의 차이는 있지만 머리에 헤드 기어를 착용하고 이 부분이 빛나고 있는 듯한 묘사는 위와 동일하다. 특히 이 그림의 경우 맨 위 그림과 같이 몸 전체를 둘러싸는 수트를 입고 있는 모습이 상당히 구체적으로 그려져 있다. 물론 그 시절에 이런 복장은 제작 기술은 물론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몸의 중앙에 있는 정체불명의 검은 장치나, 인물의 우측이나 등뒤로 연결된 호스와 유사한 물체는 역시 현대 우주비행사의 모습과 무척 유사하다.

한편, 인물이 아닌 UFO 자체를 묘사한 듯한 그림들도 많이 남아 있다. 아래는 탄자니아의 이톨로에 있는 암벽화로 그 제작 시기는 약 2만 9천년 전 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사각형 안에 있는 두 물체가 무엇을 묘사하고 있는지 증명할 방법은 없다. 그러나 동물, 산이나 나무 등의 자연, 사람 외에는 그릴 대상조차 존재하지 않았던 3만년 전이라는 시점을 생각해 볼 때, 이 대칭형 물체가 단지 고대인의 상상의 산물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다. 상상도 그 배경이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인공물 자체가 없던 시대에 이들은 무엇을 보고 어떤 상상을 하여 이런 형태를 그린 것일까.

또한 이들 형상 아래에는 마치 지상으로 쏘아져 내리는 것 같은 두 개의 굵은 선마저 그려져 있다. 이것들이 위의 ‘UFO’와 직접 관련되었다는 점은 각도상의 연관성을 통해 확인할 수 있으며, 그간 사진이나 목격담을 통해 많이 접해온 유에프오에서 발사하는 빛이나 무기 등에 대한 묘사라고 보기에 전혀 어색함이 없다. 이 모습들은 단지 우연에 불과하단 말인가.

 

 

위 그림은 약 1만 9천년 전에 제작된 프랑스의 동굴 벽화다. 말, 소, 염소, 코끼리 등의 동물이 비교적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는 가운데, 전체적인 맥락에 맞지 않는 이상한 접시 형태의 물체들이 곳곳에 그려져 있다.

아래 그림은 위의 흰 상자 속을 확대한 것이다.

 

 

왼쪽의 인간과 유사한 생물체 앞에 접시 모양을 한 비행체들이 움직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비행체들의 인공물로서의 기하학적 특성이나 형태는 현대에 관찰되고 있는 유에프오들과 기본적으로 완전히 동일한 것이다. 앞에서와 마찬가지로, 당시의 구석기인들이 이런 형태를 자발적으로 발상해 낼 가능성은 매우 낮다.

더욱이 이 인물의 형상도 분명 보통 사람과는 다르고 배와 등에 촉수나 호스가 연결되어 있거나 혹은 빛을 발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고대인들의 엉성한 그림 실력 때문이라고 보기에는 다른 부분들의 양이나 소, 말 들에 대한 묘사가 너무 정밀하다(위로 올라가서 다시 확인해 보시라). 이 사실은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은 자기가 보고 있는 것을 정확하게 표현할 능력이 있었음에도 인물을 이처럼 괴상한 모습으로 그려 놓았다는 점을 시사해 준다. 

마지막으로 아래 사진을 보자.

 

 약 7천년 정도 전에 그려진 것으로 알려진 멕시코의 이 그림은 하늘에 나타난 정체 불명의 빛을 발하는 거대한 원반과 이를 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확연하게 담겨져 있다. 아래의 팔을 벌리고 서 있는 네 사람의 자세는 느닷없는 물체의 출현에 놀라고 있는 목격자들의 감정의 일단을 보여주는데. 어쩌면 신적인 존재로서 이 비행체를 경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위의 그림을 태양으로 여길 수도 있지만 그러기에는 크기가 너무 크고 또 가깝게 그려져 있을 뿐 아니라, 표면의 둥그런 형상을 설명하기 어렵다고 생각된다.

이 중에는 대재앙 훨씬 이전의 것들도 있지만, 상당수는 10,500년 전 이후의 것들이다.  이 시리즈 1편을 기억하실랑가 모르겠지만 거기서 필자는 지구상에 나타나는 수많은 UFO와 외계인들이 우주 전역에서 몰려 올 수는 없다는 점을 전제하고, 따라서 대부분의 그들은 사실은 지구에서 열라 가까운 곳에서 오고 가고 있을 거라는 주장을 펼친 바 있다. 태양계에 문명을 가진 3개의 행성이 있었다는 이 시리즈의 스토리 자체가 사실은 거기에 기반을 두고 있는 거다.

그렇다면, 같은 이유로 저 선사시대의 외계인들 역시 화성이나 행성 Z 둘 중 하나에서 왔을 것이다. 그렇게 그들은 수시로 우리에게 영향을 줘 왔고, 또 대재앙 후에도 심심찮게 방문하며 음양으로 교류했던 거다.

어쨌거나,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이들의 도움으로 단기간에 걸쳐 놀라운 문명을 재건했던 이집트는 외계인들이 다시 떠나면서 천천히 퇴보해 갔다. 그러나 지식인들이 그들과의 교류 속에서 남긴 문서와 기록들은 제사장이나 신관들만이 접근할 수 있는 비밀스러운 장소에 수천개의 파피루스 두루마리로 남아 있었을 것이다. 진정한 의미는 잊혀져 버린 채.

이 상황은 대략 기원전 1300년경까지 계속 이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이집트 궁정에서 자란 한 이민족의 아들이 그 비밀들을 발견하고 이집트 바깥으로 들고 나오게 된다. 이 인물은 이후 그 문명적, 역사적, 기술적 비밀들을 충분히 활용하여 향후 3천년간 지구 전체에 엄청난 영향력을 끼치게 될 특정한 세계관의 토대를 만들게 된다.

그는 이렇게 생긴 사람이었다.

To be continued

외계문명과 인류의 비밀 Chapter 9

 

 

(워닝: 본문 중 기독교적 관점에서 불편한 내용들이 등장함. 엔터테인먼트 SF로 그냥 즐기시라는)

열분들 중에는 성서나 ‘이집트 왕자’ 애니메이션 등으로 모세의 이야기에 익숙한 경우도 많을 거다. 유대인의 핏줄인 이 양반은 파라오의 유대인 영아 살해를 피해 갓난아기일 때 나일강에 버려졌는데,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파라오의 딸에게 구출되어 이집트 왕국에서 자라게 된 기구한 운명의 인물이라고 한다.

그러다가 좋은 시절 다 지나고 중년인 40세에 이르러 동포가 학대 받는 걸 보고 갑자기 열 받아서 이집트인 경비병을 죽이고 도망가 유대인들과 살게 되었다는데, 이 언저리가 좀 의심가는 부분들이 없지 않으나 머 그렇다 치자. 우리 이야기에서 중요한 건 이게 아니라 모세가 어찌하여 파라오의 궁정에서 자라고 40년이나 살았다는 점이니 말이다.

어쨌든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그가 왕족의 일원으로 자랐고 당시로서는 최고 수준의 교육교양을 습득했을 거라는 사실과, 지난 편에 언급한대로 이집트 신관들이 초고대와 외계로부터 전수받은 지식과 비밀을 숨기고 있었다면 이것들에 접근할 수 있는 극소수의 인물 중 하나였을 거라는 점이다. 그러나 모세가 이집트 왕궁을 떠난 것은 40세때임에도 막상 이집트인들을 이끌고 소위 ‘출애굽(Exodus)’를 벌인 것은 그보다 또 40년이 지난 80세에 이르러서다. 성서에 따르면 그때에 이르러서야 호렙산에서 야훼의 음성을 듣고 유대민족의 해방을 결행하게 되었다는데, 그 동안은 대체 뭘 하고 있었던 건지 의문이 가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그리고는 이때부터 영화 ‘십계’등에 잘 나오는 파라오와의 담판과 그 과정에서의 온갖 기적들, 그리고 그 화룡점정으로 홍해를 가르는 초자연적인 능력을 연출해 어렵사리 유대인들을 이집트 밖으로 끌고 나오게 된다. 허나 그런 담에는 수십만 유대인들과 40년 동안 광야를 헤매다가 막상 본인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는 들어가지도 못하고 120살에 사망하게 되는 거다.

머 120살이라는 나이 문제는, 노아는 900살까지도 살았다니 그런가 보다 하자. 그러나 성서에서의 광막한 이미지와는 달리, 무슨 사하라 사막도 아니고 천천히 걸어가도 불과 몇 달이면 가로지를 시나이 반도를 40년이나 헤매 다녔다는 거는 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막상 도착한 젖과 꿀이 흐른다는 ‘약속의 땅’ (The Land of Promise) 가나안 또한 현실에서는 그런 아름다운 묘사와는 거리가 먼 그저 그런, 되려 척박한 쪽에 가까운 땅이었을 뿐이다.

그럼 이제 그런 관점에서 소설을 함 써 보자 추리를 함 해보자.

고대 이집트의 파피루스 문서

 

이집트 왕실에서 왕족처럼 호사스러운 생활을 즐기던 모세는 젊은 날 시녀와 애정행각을 벌이다가 우연히 왕실 도서관의 금지된 지역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곳에는 근엄하고 성스러우나 기본적으로 무식한 신관들이 관리하는 수천 개의 파피루스 더미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방탕한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바탕이 똑똑했던 모세는 이 책들을 살펴보고는, 직감적으로 여기에 그 시대의 것이 아닌, 혹은 인간의 것이 아닌 놀라운 지식과 기술들이 적혀 있는 것을 알게 된다. 이 기록의 엄청남에 큰 충격을 받은 그는 시녀를 품에 안은 채 쫓아 버리고, 이때부터 비밀의 도서관에 살다시피 하며 모든 내용을 공부하고 정리하고 기록하고 암기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여 20여년이 지난 마흔 살이 되자 모세는 그 기록들의 대부분을 마스터하게 된다. 그러다가 우연히 성서의 주장처럼 태생의 비밀을 알았는지, 아니면 실은 이집트인임에도 (그런 학설도 있음) 자신이 얻은 지식을 통해 파라오를 넘어 새로운 세상을 열어보려 한 건지, 아니면 너무도 놀라운 기술과 과학을 전혀 실현할 수 없는 시대적 한계에 따른 절망 때문인지, 정든 파라오의 궁정을 떠나 버리는 거다.

그렇게 시골에서 은거하던 모세에게 40년이라는 꿈 같은 세월이 흘러갔다. 그러던 어느 날, 정말 꿈처럼 외계인들이 그를 찾아왔다…

그들이 모세를 찾은 것은 자신들의 지식을 발견하고 습득한 후 암중모색 중이던 그의 존재를 알게 되었기 때문일 거다. 여하튼 이들과 호렙산에서 한참 이야기를 나눈 모세는 이집트 땅의 유태인들을 모아 대탈주를 계획하게 되는데, 이미 ‘외계문명과 인류의 비밀’을 알고 있던 모세인 만큼 자신이 대화를 나눈 상대가 진짜 유일신 야훼라고 생각하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운운하는 말에 무조건 복종했을 가능성은 크지 않을 거다.

그렇다면 모세는 왜 굳이 출애굽을 결행한 걸까?

우원이 생각하는 그 이유는 대략 다음과 같다. 먼저 인간이면서 신 행세를 하는 파라오 치하의 이집트식 정치 체제가 진보한 외계인들의 가치관에 맞지 않았을 수 있다. 그들이 원래 세운 문명은 절대자가 백성들 위에 신처럼 군림하고 지배하는 전근대적인 것은 아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글의 맥락처럼 이집트 문명이 기본적으로 외계/초고대 문명을 계승한 것이라면 그들은 수천 년 후의 엄청난 왜곡에 큰 절망감을 느꼈을 것이고, 모세로 하여금 박해 받던 사람들을 모아 새로운 가치 하에서의 진보적 문명을 건설하도록 독려했을지도 모른다.

둘째는 모세의 개인적 야심 혹은 이상이다. 앞서 말했든 그는 당시 사람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새로운 지식을 이미 갖고 있었다. 문제는 그것을 실제로 구현할 수 있는 기술과 인프라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는 점이다. 설사 원자폭탄의 원리를 깨우쳤다 한들 이를 제조하기 위한 재료와 기술이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 않은가. 그러나 이제 그것을 소유하고 있는 외계인들이 나타났다. 이에 모세는 스스로를 정점으로 하는 새로운 세계의 건설을 노렸을지도 모른다. 어려서부터 항상 열등감을 안고 살 수 밖에 없던 파라오의 이집트보다 훨씬 위대한. 야심과 이상이 적당히 버무려진.

어쨌거나, 그런 모종의 작당을 통해 모세는 외계인들의 힘을 빌어 온갖 기적과 조화를 불러 일으키고 홍해를 갈라 유대인들을 탈출시키기에 이르는 거다.

요렇게

 

하지만 이 지점에서 새로운 문제가 시작된다. 외계인들의 힘을 믿고 수십만 난민을 이끌고 일단 이집트 땅을 벗어난 모세는 3개월 후 시나이 산에서 그들과 다시 회합을 갖게 된다. 향후의 계획과 권력관계 등을 논의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 회합이 난항이었던 거다.

이런 사실은, 흔히 아는 바와는 달리 여든 살의 모세가 회합을 위해 시나이 산을 장장 일곱 번이나 오르내렸다는 점에서 이미 드러나고 있다. 아래는 성서에 드러난 그 과정이다.

1회 : 하나님이스라엘 백성이 자신과 언약을 맺을 의향이 있는지 타진 (출애굽기 19:3)

2회: 모세는 언약의 의향을 전달하고, 하나님은 셋째날에 자신이 시나이 산 위로 강림할 것을 예고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산 기슭으로 소집 (출 19:8)

3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시나이 산에 오르지 않을 것을 다시 엄명 (출 19:20)

4회: 하나님, 모세에게 여러 가지 다른 율법을 줌 (출 20:21)

5회: 하나님. 모세에게 성막, 제사장, 제사법 등에 대해 알려주고 돌판 두개에 십계명을 써줌 (출 24:13, 40일간 체류)

6회 : 모세, 하나님께 금송아지 숭배와 관련한 이스라엘의 죄를 용서하도록 간청 (출 32:31)

7회 : 하나님, 돌판 두개에 십계명 다시 써줌 (출 34:4, 40일간 체류)

(성서 출전이므로 기독교적 표현을 사용)

여기서 주목할 만한 부분은 두 번째 회합에서 외계인들이 자신들의 위용을 일단 유대인들에게 드러내 보이고, 이어 일반 백성들은 시나이 산에 오르지 못하게 함으로서 자신과 자신이 선택한 모세의 신성함과 권위를 세웠다는 사실이다.

시나이 산의 위용. 척박한 돌산이지만 포스는 있다…

 

머 여기까지는 대략 일이 잘 풀린 듯 하다. 그러나 3회 언저리부터 모세의 리더십에 대한 의문이 생겨난다. 모세와 외계인들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개별적으로 시나이 산에 오르려는 자들이 생겨나고, 여기에 대해 다시 한번 단속을 주문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4회차에서 40일간 체류하는 과정에서는 각종 논쟁 혹은 재교육이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저 산의 생긴 꼴을 보면 80먹은 노인이 아무 대책 없이 지팡이 하나 짚고 올라가서 40일을 연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봤을 때, 이때 외계인 우주선에 탑승하여 있었거나 어딘가를 같이 갔다 왔을 것이다.

그리고는 일껏 계명이란 걸 가지고 내려오니 지상에서 기다리던 유대인들은 어느새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기고 있었다.. 라는 것이 성서의 이야기지만 금송아지 건은 아마 비유였을 거다. 스스로 신이라고 주장하며 접근하지 말라고 명령하는 정체불명의 존재와, 40일 동안이나 연락이 끊어진 채 산속에서 내려오지 않는 늙은 수장. 그런 상황 속에서 종교적, 정치적 논쟁이 남은 자들 사이에서 벌어지지 않았다면 되려 이상한 일이니 말이다.

암튼 내려오다가 이런 사실을 알게 된 모세는 십계명이 적힌 돌판을 집어 던져 깨버렸다는데, 보통 여기까지만 알고 있지만 실은 분노한 모세는 내려오자마자 ‘금송아지를 섬긴’ (반대파) 3천 명을 숙청해 버리는 말 그대로의 대학살을 자행한다. 모세가 이 무리 속에서 가진 종교적 정치적 권위가 어떠했다는 것과, 또 이를 지키기 위한 그의 집착, 나아가 타고난 성정의 잔인함이 어떠했는지를 암시하는 대목이다.

그런 다음 다시 시나이 산에 올라 40일을 빌어 문제의 돌판을 다시 받아 오는데, 그 자리에서 엄청난 책임 추궁과 함께 많은 문제제기와 다짐과 약속 등이 있었을 거라는 점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역시 열분들이 대략 알고 있던 것과는 달리 돌판에는 소위 십계명이 1,2,3 하는 식으로 정리되어 있지 않다는 거다. 출애굽기 20:1~7 절은 돌판에 적혀 있던 내용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너희 하느님은 나 야훼다. 바로 내가 너희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낸 하느님이다.

너희는 내 앞에서 다른 신을 모시지 못한다. 너희는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 위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어떤 것이든지 그 모양을 본떠 새긴 우상을 섬기지 못한다. 그 앞에 절하며 섬기지 못한다. 나 야훼 너희의 하느님은 질투하는 신이다. 나를 싫어하는 자에게는 아비의 죄를 그 후손 삼 대에까지 갚는다. 그러나 나를 사랑하여 나의 명령을 지키는 사람에게는 그 후손 수천 대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은 사랑을 베푼다.

너희는 너희 하느님의 이름 야훼를 함부로 부르지 못한다. 야훼는 자기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자를 죄없다고 하지 않는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켜라. 엿새 동안 힘써 네 모든 생업에 종사하고 이렛날은 너희 하느님 야훼 앞에서 쉬어라. 그 날 너희는 어떤 생업에도 종사하지 못한다. 너희와 너희 아들 딸, 남종 여종뿐 아니라 가축이나 집 안에 머무는 식객이라도 일을 하지 못한다. 야훼께서 엿새 동안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드시고, 이레째 되는 날 쉬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야훼께서 안식일에 복을 내리시고 거룩한 날로 삼으신 것이다.

너희는 부모를 공경하여라. 그래야 너희는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 주신 땅에서 오래 살 것이다. 살인하지 못한다. 간음하지 못한다. 도둑질하지 못한다. 이웃에게 불리한 거짓 증언을 못한다.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못한다. 네 이웃의 아내나 남종이나 여종이나 소나 나귀 할 것 없이 네 이웃의 소유는 무엇이든지 탐내지 못한다.”

이상과 같은 내용을 이후 교회에서 10개의 계명으로 정리, 분류하게 된다. 그 구체적인 순서와 내용은 개신교와 가톨릭이 좀 다른데 그것은 유태교인인 필론이 구분한 것과 이후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구분한 것을 각각 개별적으로 따르고 있기 때문. 암튼 돌판 원문에 보면 수많은 제약과 벌칙 등이 열라 폭압적인 표현들로 수록되어 있고, 복종과 사랑, 숭배가 강요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처음에는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나는 질투하는 신이다’ 와 같은 표현으로 다른 신이 존재하는 것을 암시하다가 뒤에는 스스로 우주의 모든 것을 창조한 창조주임을 주장하고 있는 등, 내용이나 문장의 앞뒤 논리적 관계가 깔끔하지 못하며 모순적임을 알 수 있다. 신의 문장은 고사하고 외계인의 문장으로도 그리 격에 맞지 않는다.

허나 이보다 더 의문스러운 것은, 진보한 외계인들이 굳이 왜 그 시대 인간들의 수준에나 어울리는 이런 공포스러운 율법과 무조건적 숭배를 강요했느냐는 거다. 이런다고 자기들한테 과연 무슨 이득이 있었을까.

바꾸어 말하자면, 이런 강압적인 윤리적 종교적 규범을 통해 이익을 얻는 자는 누구였을까…?

토라

 

여기서 우리는, 단지 이 외계인 시리즈뿐 아니라 세계 역사와도 깊은 관련이 있는 한 대목을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다들 알다시피 성서는 창세기로 시작해서 요한계시록으로 끝을 맺는 66권의 장대한 기록이다. 여러 저자들이 쓴 글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고(기독교 일각에서는 저자들에게 성령이 내렸으므로 신이 직접 썼다고 하고 ‘성서 무오류성’을 주장하기도 하나 예수의 행적을 다룬 4대 복음서 안에서만도 사실관계의 모순이 숱하게 등장) 크게 구약 39권과 신약 27권으로 나누는데, 그 분기점은 바로 예수의 탄생이다.

사실 기독교 신학의 입장과 무관하게 냉정한 관점으로 본다면 구약과 신약은 전혀 다른 철학을 다루고 있는 두 개의 다른 책이다. 이 다른 철학의 구약 쪽 중심이 되는 것이 위 돌판의 내용, 즉 배타적 유일신앙과 종교 및 생활 규범의 제시 및 그에 따른 보상과 처벌을 논하는 ‘율법’이다(이것이 신약에 이르러서는 예수에 의해 사랑과 소망, 관용과 용서 등의 인간적인 관점으로 무게 중심이 바뀌게 되는 거다).

이 구약성서 중에서도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이 바로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의 첫 다섯 편인데, 이를 토라(Tora), 혹은 ‘모세오경’ 이라고 한다. 이렇게 부르는 이유는 다름아니라 이 다섯 편의 저자가 바로 모세이기 때문이다(다른 신학자들에 의해 이후 편집, 첨삭되었다고도 함).

이 부분은 모세가 중요한 다섯 개의 경전을 썼다는 기술적 사실에서 끝나지 않는다. 이 다섯 개의 경전 속에, 아니 실은 창세기와 출애굽기 두 편 안에 천지창조에서부터 에덴동산에서의 추방, 소돔과 고모라, 노아의 방주, 아브라함, 카인과 아벨, 출애굽 등으로 대변되는 우주와 인간의 탄생과 원죄의 발생, 인간의 몰락, 십계명 등 유태교와 기독교, 나아가 이슬람교의 세계관의 뼈대를 이루는 주요 사건과 철학들이 망라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유태교와 기독교(신,구교, 성공회, 동방정교를 비롯한 모든 기독교계 종파 포함)그리고 역시 토라를 기본경전으로 삼는 이슬람교는 공히 모세라는 야심적 일개인에 의해 창시된 거나 다름 없는 것이다…

물론 모세의 원래 목적이 이렇듯 세계적 종교들을 창시해서 수천 년을 존속시킨다는 것은 아니었을 게다. 그가 필요했던 것은 ‘반신반인’인 파라오와 이집트의 기존 신들을 대신할 새로운 유일신 야훼의 신화, 그리고 그 대리인으로서 자신의 권위였다. 이를 통해 그는 아마 이집트의 비밀 문서들을 통해 접하고 꿈꿔왔던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려 했을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미래를 향한 비젼과 개인적인 권력욕이 적당히 섞인 형태로 말이다. 이런 그의 의도와 이집트 문명에 대한 외계인들의 환멸이 적절히 맞아 떨어진 거다.

그러나 그 실현 과정에서 다시 상황은 어긋나게 된다. 정신적으로 진보한 외계인들에게는, 아무리 통치와 질서를 위한 수단이라 한들 모세의 ‘질투하는 신 야훼’ 드립이나 율법과 상벌, 반대파에 대한 무자비한 학살 등이 맘에 들었을 리가 없다.

그래서 그들은 참다 못해 모세에의 협조를 거부하고 그만 떠나버리고 만다. 그날로부터 계속되는 40년간의 방랑은 이를 통해서만 설명이 가능하다. 모세와 유대인들의 ‘약속의 땅’ 행이 큰 차질을 빚게 된 거다.

여기에는 두 가지 시나리오가 있다. 먼저, 약속의 땅이 애당초 지금의 팔레스타인 일대 가나안 지역이 아니었을 가능성이다. 물론 ‘이집트의 강(나일강을 의미)에서 유프라테스강 사이’라는 약속의 땅의 구체적인 지역이 출애굽기에 등장하고 이 땅은 이미 창세기에 아브라함과 그 아들 이삭, 손자인 야곱에게도 약속되었던 바 있으나, 이 내용의 필자가 바로 모세 자신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어디까지가 사실일지는 매우 의심스럽다.

그렇다고 보면 이 지역은 어쩌면 외계인들만이 데려다 줄 수 있는 매우 먼 어느 지역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외계인들과의 공조가 끊어진 마당에 모세에게는 수십만에 달하는 유랑민 집단을 그 약속의 땅에 데려갈 수 있는 아무런 정보도 힘도 없었던 것이다.

이를 통해서, 걸어서 몇 달이면 충분할 거리를 40년 동안이나 헤매고 다닌 출애굽기의 미스터리가 풀린다. 그리고 막상 도착한 가나안에도 약속된 땅이 기다리던 것이 아니라 이미 그 지역에 살고 있던 원주민들과 열라 싸워서 점령해야 했다는 점이나, 그리고도 얼마 후에 결국 쫓겨나 수천 년이 지난 최근에 이르기까지 그 땅을 다시 차지하지 못했다는 점도 설명이 된다.

결론적으로, 그들이 도달한 팔레스타인 지역은 유태인들이 애초에 약속 받은 옥토가 아니었다. 그들은 어딘지 모를 그곳에 결국 가지 못했고, 척박하고 건조하며 이집트에서 얼마 떨어지지도 않은 곳에서 누구보다도 힘들게 생존을 위한 투쟁을 벌여야 했을 뿐이다. 젖과 꿀이 흐르는 그곳은 토라의 저자 모세에 의해 사후에 짜맞춰지고 윤색된 이야기일 뿐인 것이다…

모세가 이끄는 유태인들은 이 빨간 선을 따라

시나이 반도를 지나 가나안 땅으로 들어갔다.

고작 남한 크기만한 이 지역을 통과하는데

40년이라는 세월이 걸린 이유는 원래의

약속의 땅’ 계획이 틀어지고 전혀 새로운

계획과 전략을 수립, 시행하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일까.

 

그러나 모세는 바보가 아니었다. 외계인과의 공조가 흐트러지고 자신이 이끄는 수십만 난민에게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된 것을 알았을 때, 그는 자신의 권위와 권력을 유지하고 향후에 유용하게 써먹기 위한 하나의 도구를 준비하게 된다. 이 도구를 만드는 원리는 이미 파라오의 궁정에서 습득했지만 필요한 것은 재료와 기술이었고, 그것은 외계인들의 힘을 빌릴 수 밖에 없었다.

아마 그것은 두 번째 40일간의 회담을 통해 얻어냈을 것이다. 두 번째 돌판을 가지고 산을 내려왔을 때는 첫 번째의 경우와는 달리 모세의 얼굴에서 광채가 나서 마주보기가 두려웠다(출 34:29~30)는 기록이 남아 있다. 따라서 두 번째 돌판 자체, 혹은 그것과 함께 가지고 온 물건 중 당시의 인간으로서는 얻을 수 없는 모종의 강력한 에너지원이 포함되어 있었을 거라고 상상할 수 있다.

그리고 두 번째 가져온 돌판에는 첫 번째 외에 추가적인 글들이 실려 있는데, 그 중 특기할 것은 이전과는 달리 ‘내가 네 앞에서 아모이 사람과 가나안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을 쫒아내리니’ (출 34:11) 에서 보듯 주변의 구체적인 지명이 갑자기 등장한다. 이것은 외계인들과의 약속이 어그러진 후 모세가 현실적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일부러 채워 넣었을 것이다.

암튼 이렇게 다시 돌아온 모세는, 하나님의 손가락으로 새겨진 야훼의 구체적 증표인 성스러운 돌판과 새로이 제작한 모종의 도구를 통해 지도자로서의 권위를 유지하게 된다. 그런데 이것들이 부여한 것은 단지 정치적, 정신적 권위만이 아니었다. 이것이 가진 ‘물리적 힘’을 통해 모세는 이후 수십 년 간 절대적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고, 또한 돌판에서 약속되었듯이 결국은 팔레스타인 지역의 많은 원주민 부족들을 물리치고 이스라엘을 세우게 되니 말이다.

그 도구는 바로 아래의 것이었다.


To be continued

예전에 너무 재미있게 보았던 글인데 딴지일보에서 이미 사라지고 없어서 어렵게 구해서 올려 봅니다.

딴지 일보 http://www.ddanzi.com 에 연재 됐던걸
탱(Taeng’s Blog)의 블로그 http://devilishfire.blog.me 에서 퍼옴

1621092

2011년에 책으로도 발간되었는데 현재 수급상황이

여의치 않아 새로운 출판사를 물색 중이다.

사진은 우원의 책을 들고 포즈를 취한 봉모 감독.

구매를 원하시는 분은 여기로…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702345

파토님 재미있는 글 감사드리고 저작권에 문제가 있으면 조치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