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EARCH] 외계 문명과 인류의 비밀 11편, 12편, 13편 BY 파토

■  외계 문명과 인류의 비밀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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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문명과 인류의 비밀 Chapter 11


불길함의 상징 화성.

이너넷엔 이런 ‘쥐괴물’ 화성인 그림도

있더라는. 놓칠 수 없는 아이템…

 

 

아마도 이 글을 계속 읽어온 열분들은 은연중에 화성은 나쁜 넘, 행성 Z는 좋은 넘으로 여기는 경향이 생겼을 거다. 그 이유는 우원이 행성 Z를 대재앙 전의 지구문명과 연관짓고 식민/혼혈 문명의 바탕으로 상정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화성은 지구/ Z 연합군과 태양계의 명운을 걸고 싸우는 숙적으로 그려졌다.

 

머 그렇게 이야기를 끌어갔으니 사실이라고 치자. 하지만, 그래서 대재앙 후에도 인류는 항상 행성 Z와만 관계했던 걸까? 물론 Z인은 달에 진주했기 때문에 가깝게 있고 화성인들은 이아페투스에 있었으니 열라 멀리 있다는 것이 이 글의 설정이다. 또 이들이 대재앙 직후에는 굳이 지구에 찾아올 이유가 없었을 거라는 점도 나름대로 설명했었다.

 

그러나 수천 년 세월이 지난 다음에까지 그 상황이 이어져야 할 이유는 없을 거다. 달이나 이아페투스가 아무리 크고 잘 만들어진 우주기지라 한들 결국 인공물이다. 진짜 흙과 돌과 풀과 물로 만들어진 행성의 생명력, 생태계 시스템이나 자정능력을 충분히 갖출 수 있었을 리 없다. 시간이 지나고 인구가 늘어나고 그 속에서의 사회가 다변화되면서 리소스는 점점 줄어들 수 밖에 없다. 게다가 태양빛이 충만한 표면이 아닌 구조물 내부에서 살아야 한다는 점은 아무래도 생물의 자연스러운 서식 조건은 아니다.

 

말 나온 김에 달과 이아페투스 표면에 존재하는 기계문명의 흔적을 좀 더 살펴보고 넘어가자. 아래는 달 표면에서 찍힌 탑 내지 성의 사진이다.

 

 

이런 구조물은 달의 여러 곳에서 발견되는데, 아래의 것은 미국과 러시아가 하나의 탑을 다른 각도에서 찍은 거다. 달 표면 곡률과 비교할 때 높이는 수 킬로미터로 추정된다. 이런 것을 자연물이라고 주장한다면 기자의 피라미드도 그냥 산이다…

밑은 위와 유사한 (어쩌면 동일한) 탑의 사진이다. 디테일이 보이지 않도록 NASA 에 의해 미리 지워진 것으로 보인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런 거대한 탑이 아이페투스 표면에서도 발견되었다는 사실이다. 태양계 규모의 교신을 위한 안테나였을까…?


 

암튼, 이렇게 삭막한 인공행성에 살던 그들은 결국 지구에 다시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옛 고향을 연상케 하는 아름다운 자연과 풍요로움을 갖춘 푸른 행성… 태양계에 단 하나밖에 남아 있지 않은 살아있는 별. 이제 그런 지구의 자원을 활용하고 그 속에서의 영향력을 키워 가는 것은 언젠가는 바닥날 우주기지의 자원과 그들 자신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대재앙 수천 년 후 이집트와 그 모태의 문명에 영향을 준 자들은 행성 Z인이었을까 화성인이었을까? 이를 밝혀낼 어떤 단서라도 남아 있는 것일까.

 

초고대 문명의 기원에 대해 그래험 핸콕, 로버트 보벌, 리처드 호글랜드 등은 화성에 이집트 기자의 것과 비슷한 피라미드가 있고, 화성의 ‘인면암’ 또한 스핑크스의 얼굴과 닮았기에 이집트 문명은 화성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하지만 결론과 무관하게 우원은 그런 식의 근거들은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편이다.

 

그들이 주로 내세우는 것은 남아있는 외계 ‘유적’과 지구상의 유적과의 외견상의 유사함과 소위 ‘성스러운 기하학(Sacred Geometry)’ 이라고 불리는 지형 지물간의 위치나 각도들이다. 이 각도들이 지구상의 고대 유적지들과 배치 면에서 일치한다는 주장인 거다. 그러나 이는 일견 그럴싸하지만 자연이 만든 우연일 여지도 높다.

 

예컨대 구 안에 정사면체를 채워넣었을 때 구와 정사면체의 밑면이 만나는 지점은 북위와 남위 19.5도다. 이 각은 소위 성스러운 우주의 비밀을 담고 있는 것으로 이야기되며 이스라엘 국기의 도안이자 유태인의 상징인 ‘다윗의 별’ 도 이를 의미한다고 한다(모세의 비밀스러운 지식이 떠오르는 부분)

 

  

그러나 19.5도에 성스러운 비밀이 있고 없고를 떠나, 아래와 같이 울퉁불퉁한 지형에 직선을 덧입히고 많은 숫자들(이 경우는 이 지형이 존재하는 화성의 위도)와 다양한 수학 공식을 대입한 후 그 속에서 19.5 도를 찾는 작업은 좀 문제가 있다. 이런 식으로는 연구자가 ‘보고 싶은’ 숫자라면 뭐든지 발견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의 경우도, 아주 특별하고 자연물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것들(위의 탑 사진들이 그 경우) 외에는 광선과 낮은 해상도가 만들어낸 착각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70년대 바이킹에 의해 촬영된 인면암.

당시의 해상도와 기술로는 마치 인간의

얼굴같이 보였다.

글로벌 서베이어가 90년대 말에 촬영한 인면암.

특이한 사각 해자 구조는 보이지만, 인간의 얼굴

이라고 주장하기에는 한눈에도 무리다.

 


 

보고 싶은 것을 보는’ 대표적인 예. 왼쪽 흐릿한 화성표면의 지형에

선을 그리고 색을 넣어 이집트 공주의 얼굴을 만들어냈다.

 

 

그래서 이런 불충분한 ‘물증’들을 보충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역사적, 문헌적인 증거들인데, 이런 점은 일반적인 역사를 기술할 때도 마찬가지다.

 

일단 명확한 사실 중 하나는, 이집트 수도 카이로의 옛 지명 ‘엘 카이라(El Kahira)‘가 바로 ‘화성’이라는 의미란 점이다. 왜 이집트의 수도 이름이 굳이 화성이 되어야 했는지는 반드시 거기 따른 역사적 맥락이 있기 마련이다. 세종시를 아무 이유도 없이 ‘목성시’로 부를 수는 없는 일 아니냐. 머 수원을 삼성시로 바꾸자는 사람도 있긴 하더라만…

 

또 한가지는 로마 역사가 리비우스의 아래와 같은 언명이다.

 

로마인들은 그들의 아버지와 로마 제국의 아버지가 다름아닌 화성이라고 공언한다

(The Roman people profess that their father and the father of their empire was none other than Mars)

 

 – 초기 로마의 역사(The Early History of Rome). T. Livius 저.

 

 

리비우스는 BC 59년에 태어나 AD 17에 죽었으니 공화정 말기에서 제정 초기를 살았고 유명한 로마 역사가인 타키투스보다 한세기 정도 이른 시대에 활동한 사람이다. 로마의 전성기를 살아가던 지식인인 그가 아무 이유도 없이 저런 황당한 말을 내뱉을 리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집트 ? 그리스 ? 로마는 문명적으로 연장선상 하에 있었다.

 

또한 이집트에서는 화성을 ‘죽음의 별’ 이라고 불렀다. 이건 어쩌면 이집트인들이 화성의 불행한 역사를 직접 전해 들었기 때문에 붙인 이름은 아닐까. 한편 그리스와 로마에서 화성은 항상 전쟁의 신이었고(고대의 전쟁은 지금과 같은 참혹함과 잔인함의 이미지 외에 영웅적인 풍모도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자), 바빌로니아에서는 네르갈이라고 했는데 이는 전쟁의 왕, 위대한 영웅, 큰 집의 주인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였다.

 

이렇게 보면 전쟁의 신 마르스는 불길한 재앙과도 결부되지만, 이를 극복하고 운명을 대적하는 영웅의 이미지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건 철저하게 부정적이라고 할 ‘사악함’같은 느낌과는 좀 다른 것이다.

 

이 맥락에서는 이제 고대 이집트에 잊혀진 기술과 지식을 전수한 이들은 오히려 행성 Z 보다는 화성인들이라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게 된다. 재앙 이전 인류와 보다 긴밀하게 관계한 것은 Z 였다. 그러나 대재앙 후 이집트인들에게 먼저 접촉한 것은 화성인들이었던 거다.

 

왜일까? 그것은 행성 Z인들에 비해 화성인들은 모든 것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거대한 달을 보유하고 있는 Z인들은 생활에 더 나은 조건을 구비하고 있었고 필요하다면 그 속에서 농사도 짓고 뭐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화성인들은 춥고 먼 토성 궤도에 작고 고장난 자폭머신 하나를 가지고 있을 뿐이었고, 모성인 화성이 남아있긴 했지만 초토화된 표면은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거칠기만 했다.

 

그래서 그들은 먼저 지구에 눈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멸망의 충격을 어느 정도 추스리고, 화성의 지하에 기지도 하나씩 건설해 가면서 수천 년간 물리적으로나 심정적으로도 조금씩 지구에 가까워졌을 거다. 그리고는 결국 ‘신’을 자처하며 이집트의 초고대 문명을 세우고, 기술과 건축술을 전수하고, 파라오의 절대왕정을 지원하고, 모세와 교류하고, 그에게 강력한 무기를 줘서 유태인들을 빼내오도록 한다. 그런 것을 보면 화성인들은 전쟁의 신이라는 이미지에 걸맞게 다소 호전적이고 제국주의적인 존재들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원래 인류는 행성 Z와 교류하고 있었는데 대재앙 후라고 해서 쉽사리 화성인들과 교류하는 게 가능했을까? 예컨대 피라미드와 스핑크스의 기초는 이미 대재앙 전, 즉 Z의 문명적 영향하에 만들어졌다고도 우원 스스로 기술했었다.

 

 


 

기자의 세 피라미드의 기초는 대재앙 직전인 기원전 10,500년경의 오리온좌에 맞춰져 있고, 이것은 행성 Z인의 영향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피라미드가 최종적으로 완성된 것은 기원전 2500년경이다. 그렇다면 Z 인이 만들어놓은 기단 위에 화성인의 기술과 영향을 통해 피라미드를 마저 세웠단 말인가?

 

이것의 논리적인 답은 하나 밖에 없다. 그것은 행성 Z와 화성의 문명이 서로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유사한 바탕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나중에는 많이 달라졌지만 기본적으로 같은 역사와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었던, 한 가지에서 갈라져 나온 두 개의 문명이었던 거다. 지구까지 포함해서 말이다(이 이야기는 나중에 더 하자).

 

그럼 행성Z 인들은 지구에 무관심했던 걸까? 물론 그렇지는 않았다.

…이제 지난 10편의 마지막 장면으로 돌아와 보자.

‘Battesimo di Cristo’ by Aert de Gelder (1710)

18세기에 그려진 예수의 세례장면에 

UFO가 등장하고 있다. 


모세로 대변되는 경직되고 잔인하고 엄중한 사고방식이 지배하던 유대에 한 젊은이에 의해 변화의 단초가 던져졌다. 

 

그는 모세가 만든 세상을 극복하기 위해 나타난 사람이었고, 모세만큼이나 베일에 가린 삶을 산 인물이었다. 10대 초반부터 죽기 3년 전인 서른 살에 이르기까지 그의 행적은 알려진 게 거의 없고, 일설에 따르면 중동과 인도 지역 등을 다니며 배움을 구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그가 만난 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성장한 유태교의 세계관과는 크게 다른 어떤 것을 갖고 돌아왔다. 경직되고 보수적인 율법으로 묶여있던 시절에 혁명적이라고도 할 사랑과 용서라는 급진적 개념을 들고서 말이다.

 

물론 비슷한 관점을 설파한 사람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많았다. 그러나 그의 가장 큰 차이는 말과 가르침만이 아니라, 모세의 것을 능가하는 ‘기적’또한 갖고 돌아왔다는 점이다. 그 기적의 성격도 모세의 경우와는 반대였다. 모세의 기적이 파괴와 죽음(전쟁, 화성)과 관련된 것이었다면 그의 기적은 치유와 부활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 두 상반된 세계관, 그리고 그것이 불가사의한 기적의 형태로 표출되었다는 사실. 무엇보다도 이 두 가지 성향이 향후 끊임없이 충돌하며 세계 역사를 실제로 끌고 왔다는 점.

 

그렇다. 모세와 예수의 ‘신’은 실은 전혀 다른 존재였다. 비근한 기술과 능력을 가졌으되 가치관을 달리하는 두 신적 존재.

예수는 모세와 화성의 가치관이 지배해가는 지구 문명의 방향을 바꾸가기 위해 나타난 행성 Z의 제자였던 것이다…

 

 

To be continued

외계문명과 인류의 비밀 Chapter 11

 

화성표면의 돌무덤. 저것이 과연 자연 지형일까.

아래 두 사진은 지구의 유사한 장소들

자, 지난 시간에 모세와 예수가 다른 편이란 이야기에서 대략 끝을 맺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모세의 세계관으로 대변되는 구약성서와 예수로 일관하는 신약성서는 전혀 다른 내용과 철학을 가진 두 개의 책이다. 이 두 사상이 기독교라는 이름으로 통합된 것은 단지 예수가 유대에서 태어나 활동했기 때문에 무슨 주장을 하든지 결국 유대교의 전통과 절연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또 예수 쪽 입장에서도 아예 엉뚱한 걸 들고 나오는 분위기 보다는 유대교의 연장선상에서 개혁을 꾀했다고 비치는 것이 정통성이나 뿌리와 관련된 이점이 있었을 거다.

여하튼 이렇게 모세와 예수는 유대, 나아가 로마, 더 나아가 유럽 전체에 걸쳐 보수와 진보, 우파와 좌파를 상징하는 두 세계관을, 그러나 기독교라는 하나의 종교 형식 속에서, 전하기에 이른 거다.

이렇게 모세와 예수를, 그리고 그 후예들을 논함에 있어서 중요한 점은 모세가 화성인이고 예수는 행성 Z인라거나 그 후예들이 혈연으로 계속 엮어졌다는 뜻이 아니다. 모세와 예수는 지구인이고, 단지 화성과 행성 Z의 가치관과 기술(기적) 등을 전하기 위해 선택된 사람들일 뿐이다.

이런 뜻은 아니라는 거다…

그렇게 이들이 미친 영향은 지구인들의 사회와 문화의 가치이다. 그 시대 이후 언제나 세상은 둘 사이의 투쟁으로 점철되었고 역전과 역전을 거듭해 왔는데, 근대 이전까지는 물론 지금까지도 화성의 근소한 우세로 이어지고 있다. 심지어 기독교의 경우도 예수의 가르침의 핵심을 금새 망각한 채 화성인적인 세계관으로 점철된 보수적 지배주의에 빠지고 말았으니.

그렇다면 행성 Z에 비해 화성인이 이토록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이유는 뭘까.

첫째는 그들이 지구에 먼저 개입했기 때문이다. 선민사상에 바탕하여 오랜 세월 지속되어온 유태인들의 생존력과 정치, 경제적 영향력은 이미 오래 전 모세에 의해 씨가 뿌려진 것이다. 당시 유태 땅은 비록 지구상의 힘없는 작은 지역에 불과했지만, 거기에서부터 발현될 영향력을 화성인들은 이미 꿰뚫어보고, 계획하고 있었다. 그 증거는 실제로 모세와 팔레스타인 땅을 기반으로 유대교, 가톨릭, 이슬람, 개신교가 발흥하여 세계의 대부분 지역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숨길 수 없는 사실에서 찾아볼 수 있다.

행성 Z 조차도 그 전통 속의 인물을 대리인으로 내보내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팔레스타인 땅과 모세의 사상이 가진 가능성과 잠재력은 거대했던 거다.

둘째는 화성인들이 공포를 활용하기 때문이다. ‘전쟁의 신’의 카리스마와 두려움은 오랜 세월 이집트, 팔레스타인, 그리스, 로마 등 지중해 연안에 존재해 왔다. 출애굽과 가나안 탈취의 성서적 일화에서 보듯 화성인들은 목적 달성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폭력적인 모습을 보여 왔다. 그런 이미지는 H.G 웰즈의 ‘화성침공’에 이르는 현대에까지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셋째는 화성인들의 사상이 인간 본연의 욕망에 충실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힘을 숭상하며, 힘이 곳 법이라고 주장한다. 이집트 파라오 왕조와 성서의 율법과 언명에서 이런 사실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힘있는 자가 지배하는 세상이 그들에게는 당연한 것이며, 권력의 추구와 유지는 존재의 필연이다. 한편 그들이 세운 윤리와 룰을 어긴 자에게는 ‘돌로 쳐죽이는’ 수준의 잔인한 징벌이 따른다.

놀라운 것은 이런 사상이, 거기에 저항해야 마땅할 피지배계급까지도 세뇌시킬 정도로 파급력과 힘이 있다는 것이다. 범지구적으로 여기에 대항하는 사상이 굵은 흐름으로 형성된 것은 근대 이후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 자본주의 역시 피지배계급에게 헛된 환상을 주입하며 유사한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처럼 인류문명의 주류를 이끌어가던 화성인의 사상과 문화에 행성 Z는 어떻게 대항했을까?

바로 비밀결사를 통해서다.

 

18세기에 유럽 사회의 전면에 등장한 프리메이슨(Freemason)은 원래 스코틀랜드에 기반을 둔 석공들의 조합이었다. 그러나 일개 석공조합이 런던에 그랜드 랏지를 개설한지 불과 20년만에 유럽 전역에 126개의 지부를 거느리게 되고, 수많은 명사들을 회원으로 가입시킨다.

그렇게 가입한 회원들 중에는 아래의 인물들이 포함된다.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 하이든, 리스트, 시벨리우스, 괴테, 키플링, 코난 도일, 마크 트웨인, 오스카 와일드, 푸시킨, 볼테르, 실러, 맥아더, 나폴레옹, 에펠(에펠탑 설계자), 헨리 포드, 극지 탐험가 피어리와 스콧, 재즈 피아니스트 오스카 피터슨, 카운트 베이시, 듀크 엘링튼, 냇 킹 콜, 우주비행사 존 글렌, 마술사 후디니, 조지 워싱턴과 루즈벨트, 트루먼을 포함한 18 명의 미국 대통령들, 다섯 명의 영국 왕들과 윈스턴 처칠을 포함한 여섯 명의 영국 수상들, 골프 선수 아놀드 파머 등등

18세기 초는 아직도 기독교의 영향력이 막강하던 때다. 그런데도 종교와 무관하게 가입이 가능하고 (다만 Supreme Being, 즉 초월자를 인정해야 함) 이단의 냄새를 진하게 풍기는 이 단체는 한번도 박해를 받아본 적 없이 오늘날까지 승승장구 하고 있다는 점은 그들의 숨은 힘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이 프리메이슨의 바탕은 바로 유명한 성당기사단이다. 십자군의 일원으로 예루살렘에 100년 가까이 주둔해 있던 성당기사단은 순례자들에게 돈을 빌려 주며 막대한 이익을 챙겼고, 한때 전 유럽에서 가장 큰 가톨릭 조직으로 발전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사실 그들이 100년 가까이 예루살렘에서 한 일은 주로 솔로몬 성전을 파헤쳐 기독교의 유물들을 찾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솔로몬 성전에 있어야 했던 가장 중요한 유물이 바로 모세의 성궤였다. 솔로몬 성전 자체가 성궤를 안치하기 위해 지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솔로몬 성전 복원도

성당기사단이 성궤를 발견한 것 같지는 않다. 그랬다면 그 자체로 기독교 문명을 뒤흔드는 일대 사건이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험 핸콕은 저서 ‘신의 암호’에서 이미 솔로몬 왕의 시기에 성궤는 시바여왕의 땅 이디오피아로 빼돌려 진 것으로 추론하고 있는데, 여하튼 성당기사단이 이곳을 점령한 12세기경에 성궤가 없었던 것은 분명하다.

성당기사단의 본거지였던 알 악사 모스크. 솔로몬 성전이 붕괴된

후 그 자리에 세운 것으로, 지금은 이슬람 사원이 되어 있다.

솔로몬 성전의 지하이자 이곳의 지하에는 많은 유물들이 숨겨져

있다고 믿어져 왔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성당기사단이 고대로부터의 유물과 비밀들을 찾아냈을 가능성은 적지 않다. 물론 여기에 있던 것들은 대개 유대교, 즉 화성문명의 것들이었다. 허나 100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그것들을 들여다보고 해석하면서, 또 인도나 이슬람, 불교 등 동방의 다양한 종교와 접하면서 조금씩 새로운 사상을 키워나가게 되었을 것이다.

예루살렘이 살라딘에 의해 함락된 후 유럽으로 돌아온 성당기사단은 ‘바포멧’이란 염소머리의 신을 섬기게 되는데, 이 이름은 원래 12세기 유럽의 시에서 마호멧(무하마드. 이슬람교의 창립자)을 잘못 표기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던 것이 성당기사단에 의해서 새로운 형태의 신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거다.

바포멧은 이후 유럽에서 악마(Devil, Satan)등과 같은 존재로 여겨지게 되고, 위와 유사한 그림들이 사타니즘의 상징으로 회자되었다. 그러나 선입견을 버리고 보면 이 형상은 다양한 여러 가지의 의미를 담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먼저 바포멧(마호멧)이란 이름은 이슬람교의 영향에서 온 것임에 분명하다. 거기에 유태교적인 별을 이마에 붙이고 천사의 날개를 하고 있고, 앉은 자세와 손의 위치, 가슴의 유방 등은 불교와 힌두교 등 인도 계통 종교의 영향이 드러난다. 가장 이질적인 염소 머리의 경우는 다양한 종교에서 공통적인 ‘희생 제물’ 로서의 염소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영어로 희생양은 scapegoat 이라고 부른다. Goat은 염소라는 뜻).

이렇게 보면 일견 섬찟해 보이기도 하는 이 그림이 실은 다양한 종교의 통합을 상징하는 존재를 표현한 것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성당기사단은 단순히 이렇게 생긴 마귀를 숭배한 게 아닌 거다.

거기에 위의 그림을 보면 알 수 있듯 바포멧의 그림에는 달이 같이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위에서는 왼쪽 위와 오른쪽 아래에 두 가지 형태의 반달이 그려져 있다. ‘달’은 당연히 행성 Z의 상징이다.

이렇듯 성당기사단은 100년간의 예루살렘 생활과 발굴 속에서 중세 기독교 도그마의 한계를 절감하게 되었고, 화성 및 행성 Z에 대한 지식과 이슬람 인도 등 다양한 문화권의 종교를 종합하여 자신들만의 새로운 사상을 엮어낸 것이다. 그럼으로서 화성계 문화가 지배하고 있는 중세 기독교계에 영향을 미치려 했을 것이다.

14세기 초 프랑스의 왕 필립 4세가 유럽 전역에서 강성했던 성당기사단을 일시에 검거하고 고문, 화형 시켜 전멸에 이르게 한 것은 바로 이런 맥락과 관련이 있다. 이 피의 대숙청에서 살아남은 성당기사들이 유럽의 변방인 스코틀랜드와 포르투갈로 숨어 각각 프리메이슨과 그리스도 기사단(모험가 바스코 다 가마가 소속되었던)이 된 거다.

르네상스와 프랑스 혁명, 유럽 근대의 발흥에도 배후로 관계한 것으로 지목받고 있는 프리메이슨은 그런 작업을 통해 자신들이 드러내놓고 활동할 수 있는 시대적 상황을 스스로 창조해 냈을 것이다. 근대가 프리메이슨의 작품이라는 점은 프랑스 혁명 당시 지도자였던 로베스피에르가 대놓고 프리메이슨 색체가 농후한 종교 행사를 벌였다는 점과, 비슷한 시기 공화국으로 태어난 미국의 초대 대통령 워싱턴이 33도 고위 프리메이슨이었다는 점을 통해 드러난다.

1867년에 제작된 조지 워싱턴의 석판화.

프리메이슨의 상징이 그려진 앞치마와

흙손 등을 들고 있다

 

미국 1달러 지폐에 그려진 워싱턴과 뒷면의 피라미드.

전편에 언급했듯 피라미드는 화성과 행성 Z의 공통적인

상징이다. 고로 초고대 지구의 상징이기도 했을 것이다.

 

미국의 워싱턴 기념탑. 1885년 완성. 높이 170미터.

총무게 9만 854톤의 당시로선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의 건축물이다. 이집트 오벨리스크의

복사판인 이 형태가 어째서 워싱턴 기념탑이 되어야

하는지는 프리메이슨 ? 성당기사단 ? 솔로몬 성전-

모세 ? 이집트 ? 화성/행성Z 라는 연결점이 아니면

설명될 수 없다.

 

현재까지 미국의 상징 역할을 하는 자유의 여신상

은 프랑스 프리메이슨이 미국 프리메이슨에 선물로

보낸 것이다. 위 엽서에는 자유의 여신상을 설계한

Frederic Auguste Bartholdi 의 초상이 인쇄되어

있는데, 중간에 프리메이슨의 자와 컴퍼스 마크가

확연히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그림자정부’ 라며 두려워하는 프리메이슨의 활동이 실은 중세 기독교의 정신적 물리적 지배를 극복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점에서, 설사 현재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한들 그 본래 성격은 화성이라기 보다는 역시 행성Z에 가까운 것이다. 물론 어느 시점 이후 퇴색되거나 오염되었을 가능성도 없지 않지만…

이렇게 화성과 행성 Z는 지구상에서 자신들의 정치적, 사상적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렇다면 그들이 이토록 지구에 집착하는 이유는 뭘까. 아니, 애당초 지구와 화성, 행성Z는 어떤 관계였을까.

수만 년 전 태양계에 존재했던 위대한 제국… 그 모습은 어떤 것이었을까.

 

To be continued

외계문명과 인류의 비밀 Chapter 13

 


지난 시간에 지구와 화성, 행성 Z의 관계에 대한 의문으로 끝을 맺었었다. 글타. 이들은 원래 어떤 종족이고 어떤 사이고, 또 왜 싸우게 되었나.

허나 그 이야기에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전에 우리 인류의 기원과 인류 문명의 과거에 대해 먼저 좀 생각해 보자.

고인류학의 정설은 지금의 원숭이, 고릴라 등의 조상인 영장류가 인간 전 단계의 존재인 호미니드(오스트랄로 피테쿠스 등)로 진화하고, 그것이 다시 인간의 특성을 더욱 많이 가진 호모 (호모 에렉투스, 호모 사피엔스 등)로 진화해서 지금에 이르렀다는 입장이다. 호미니드의 출현은 2~3백만 년 전, 호모의 출현은 170만년 전, 대략 이렇다.

그리고 호모 사피엔스 네안데르탈렌시스, 즉 최초의 호모 사피엔스인 네안데르탈인이 출현한 것은 대략 35만년전으로 이들이 구석기시대를 꽃피웠고 지금 우리들의 직계 조상이자 우리가 속해 있는 종인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즉 크로마뇽인은 약 5만년 전인 후기 구석기 시대에 나타나 신석기 시대를 열고 오늘에 이른 것으로 알려진다.

깔끔하고 일목요연한 설명이나, 문제는 고인류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심각하고 만성적인 증거부족 현상에 시달리고 있다는 거다. 유명한 타웅 베이비나 리처드 리키의 1470, 도날드 요한슨의 루씨나 최초의 가족 화석을 포함해 전 세계에서 발견된 모든 원인/인류 화석을 모아 놓은들 커다란 탁자 위에 다 쌓아놓을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이건 결국 발견된 화석들의 특징이 각 시대와 종의 보편성을 담보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예컨대 100만년 전 지층에서 단 하나의 두개골이 발견되었다면 그게 100만년에 살았던 호모 에렉투스 종의 평균적인 형태라고 말할 수 있을까? 특별히 머리가 크거나 작거나 주걱턱이거나 얼굴이 쥐 형태로 변하는 질병을 앓았을 수도 있는 거다. 고인류학의 성과를 완전히 무시하자는 뜻이라기 보다는, 이렇듯 빈틈과 한계가 많다는 소리.

이 정도 전제해 두고 아래의 것들을 함 보자.

 

공룡에 대해 조금의 지식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위의 파충류들이 단지 용 같은 상상의 존재나 현생 도마뱀, 악어 등을 표현한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을 거다. 맨 위는 트리케라톱스와 오리너구리 계통 공룡, 그 아래도 트리케로톱스, 그 밑은 브론토나 브라키오사우르스 류의 뇌룡, 맨 밑은 티라노나 알로 사우루스, 벨로시렙터 계통의 육식공룡으로 전문가라고 할 수 없는 우원도 한눈에 알아볼 정도다.

허나 인류 문명에 공룡의 존재가 알려진 것은 19세기 화석을 발굴하면서다. 따라서 그 상식에 기초한다면 위의 정확한 그림과 모형 등은 공룡이 세상에 널리 알려진 이후에 만든 작품이어야 한다. 그러나 실은 위 공예품들은 2,3천년의 페루 잉카 등지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상당수의 그림과 모형에 인간이 함께 등장한다(위에 소개한 것 외에도 수십개가 더 있다).

학계의 정설에 따르면 당시의 인류는 공룡의 모습을 알아서는 안되는 거니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7천’만’년 전에 멸종한 걸로 알려진 공룡이 실은 2,3천년 전까지 인간 주변에서 저렇듯 어슬렁거리고 있었던 걸까. 아니면, 인류 종족이 우리 생각보다 더 오래되었고 공룡은 늦게까지 살아남아 그 교집합의 시대가 존재했던 걸까. 그렇다면 저 그림과 공예품들은 아득한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작품들의 복제본일지도 모른다.

이는 인류의 기원과 문명이 어쩌면 우리가 알던 것보다 훨씬 더 오래되었을지 모른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그런 점은 얼마 전 선보인 초고대의 물체들을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머 굳이 다시 예를 들지 않더라도, 지금까지의 논의 속에서만 봐도 초고대 지구에 발달된 문명이 있었다는 사실에는 별다른 이론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 시리즈의 논의를 통해 대재앙, 즉 초고대 문명의 종말이 언제 닥쳤는지 알고 있다. 그것은 기원전 10.500년 경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또 하나의 질문이 생겨난다.

그 문명은 과연 얼마나 오래 전에 시작된 것일까…?

위 피리 레이스의 지도(16세기 작)에는 당시

탐험가의 손길이 닿지도 않은 아프리카

서해안과 남아메리카 동해안, 그리고 19세기에

발견된 남극대륙의 해안선까지 그려져 있다.

그런데 이 지도는 터키의 제독이던 피리 레이스가

작성한 것이 아니라 고대로부터 전해오는 지도를

베낀 것이다.

지난 8편에서 우리는 이런 것들을 살펴 보았다.

 

수 만년 전 원시인들에 의해 그려진 이 벽화의 인물들은 분명 당시의 일반인들과는 전혀 다른 특이한 존재들이다. 그래서 ‘외계인’이라고 이야깋하게 된다. 그러나 여기서 놓치기 쉬운, 그러나 아주 중요한 점이 하나 있다.

우원은 앞편들에서 외계 우주선들이 먼 은하계 너머에서부터 지구에 숱하게 날아올 리가 없다는 점을 들어, 현재 지구상에 나타나는 UFO들은 대부분 화성인과 행성 Z인의 것이라는 주장을 폈었다. 그렇다고 가정해도, 지구와는 다른 별의 생물인 그들이 모두 저렇게 두 다리와 두 팔, 하나의 머리를 가진, 인간과 저리도 유사한 존재들이란 말인가?

생명의 탄생과 진화는 그 배경이 되는 공간의 특성에 철저히 지배받는다. 중력과 온도, 대기의 성분 등등에 아주 예민한 영향을 받고, 적자생존의 방향 역시 행성마다 다를 수 밖에 없다.

 

이넘들… 너무 인간에 가깝게 생긴거다.

실제로 우리가 외계의 지적 생물체를 발견한다면

그넘은 지구상의 어떤 생물과도 닮지 않았을 거다.

 

그런데 저 위 그림들의 인물들은 사지가 있는 건 물론이고 신체 비율 등 어디를 봐도 인간의 범주를 넘어서지 않는다.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되냐. 역시 조물주는 존재하고 우주의 모든 생물을 그 분의 형상을 본따 만드신 걸까?

그럴리가.

여기에 대한 합리적인 답은 하나뿐이다.

저 넘들은 실은 전부 인간인 거다. 굳이 우주복 비슷한 것과 헬멧을 쓰고 있는 걸로 보아 다른 곳에서 다르게 적응했더라도 말이다. 결국 우리나 별다를 것 없는 인간들이 어딘가에 살고 있는 원시적 부족을 저렇게 방문한 거다. 

그럼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어째서 다른 행성에서 온 외계인들이 인간일 수 있단 말인가.

결국, 지구인과 화성인, 행성 Z인이 한 핏줄이라는 뜻이다.

글타… 화성과 Z는 원래 지구에서 생겨나고 진화한 생명체인 인류가 개척한 식민지였던 것이다. 따라서 두 행성의 종족들은 식민지로 이주한 우리 인류의 후손이었다. 저 그림들은 그들이, 역시 발달되어 있던 지구에 일부 원시상태로 남아있던 오지를 방문한 것을 지역민들이 표현한 것 뿐이다. 지금도 그런 지역은 널려 있으니까.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 세 행성의 주민이 한 핏줄이라는 건 논리적으로 당연하다. 하나의 태양계 속에 있는 여러 행성들에서 각각 생명이 생겨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생명의 발생은 이상적인 조건하에서는 필연적일지 모르지만 일반적으로는 결코 쉬운 일이기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구와 화성, 행성 Z에 동시다발적으로 생명이 탄생하고 비슷한 진화 속도를 거쳐 같은 시점에 서로 대등한 전쟁을 치를 만큼의 과학기술 문명을 일궈냈을 가능성은 전무하다.

이게 뜻하는 바는 하나다. 이 세 행성의 문명은 하나의 뿌리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뿌리는 지구다. 그것은 지구에서 생명이 만들어지고 인간이 진화했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화성과 행성 Z는 수만 년 전 과거 초고대의 인류 문명이 세운 식민 행성이 되는 거다.

따라서 초고대 문명의 기원은 적어도 4,5만년, 혹은 10만년 이전의 과거로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지구에서 기술 문명이 생겨나고, 그것이 우주여행을 할 정도로 발달하고, 화성과 행성 Z 에 식민지를 건설하고, 그들이 지구에서 우주복을 입어야 할 정도로 현지에 적응하고, 지구의 깡촌을 방문해서 저 그림들이 남은 것이 이미 지금으로부터 수만년 전이니 말이다.

그럼 그 찬란했던 기술 문명의 자취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당근 대재앙 시점에서 대부분 물에 휩쓸려 갔고, 그렇지 않은 곳들이라도 땅속 깊은 곳에 묻혀있다. 2천년 전의 로마 유적지도 현대 로마보다 9미터 아래에 있다. 불과 2천년의 세월이 이러할진대 수만년 전이라면 그 남은 잔해들은 모두 땅속 100미터 이상의 깊은 곳에 돌덩어리들로 남아 있을 거다…

암튼, 이 문명은 지구를 중심으로 한 식민지 연방으로 발전해 갔지만 다시 수천 년 세월이 지나면서 화성과 행성 Z 는 독자적인 문명을 발전시켜 갔고, 지구의 통제력과 구심력은 서서히 약해졌다. 그러면서 화성은 군사력과 독재를 기반으로 한 전쟁 문명으로, 행성 Z는 예술과 문화를 중시하는 리버럴한 문명으로 커 갔다.

그 과정에서 지구는 연방의 고향으로서 상징성만을 남겨 둔 채 쇠퇴했고, 이런 특성으로 전체주의적 화성보다는 행성 Z 와 보다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던 거다.

그렇다면 화성과 행성 Z 간의 전쟁은 왜 일어났던 걸까.

그저 추측만이 가능할 뿐이다. 그러나 아마도 지구의 쟁탈권을 두고 벌인 전쟁이 아니었을까. 지구에서 중요한 자원이 발견되었을지도 모른다. 예컨대 석유나 석탄 등은 거대한 양의 생물의 사체가 수억 년의 세월이 지나며 변이된 것이기 때문에  화성이나 행성 Z 에는 존재할 수 없었을 지도 모른다.

아니면 말 그대로 지구를 정복하기 위해서일 수도 있다. 화성과 행성 Z의 자연은 물이나 공기가 있었다 한들 지구의 사막 수준으로 척박했을 것이다. 모성 지구의 힘이 약해지면서 그들이 아름다운 자연을 가진 지구를 자신들의 소유로 만들기 위해, 아마도 화성이 지구와 관계가 깊었던 행성 Z를 쫓아내고 지구를 독차지하기 위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나 외의 다른 신을 섬기지 마라’, ‘나는 질투하는 신이다’ 라는 성서의 언명은 지구와 연관이 깊었던 행성 Z에 대한 화성인들의 뿌리깊은 시샘을 나타내는 것은 아닐까.

혹은, 어쩌면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바로 정통성이다.

조조(曹操)

후한(後漢)말의 중국은 위 촉 오의 3개 나라로 나뉘어져 있었다. 제갈량의 ‘천하삼분지대계’에 따르면 이를 정족지세(鼎足之勢, 솥발의 지세)라고 하며 세 세력이 어느 한쪽도 절대 우위를 차지하지 못한 채 서로 대립하는 형국을 의미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촉과 오의 힘을 합쳐본들 위의 그것에 미치지 못했다. 그 결정적인 이유는 위의 조조가 황실을 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린 헌제를 꼭두각시로 내세운 조조는 나라의 군대를 직접 움직이고, 황명을 빌어 자신의 뜻을 관철시켰다. 황실이 존재하는 한, 외형적으로나마 한()의 신하였던 손권 유비 등등은 조조의 계략임을 알면서도 헌제의 직인이 찍힌 칙령을 마냥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만약 화성과 행성 Z가 이런 류의 정통성을 노렸다면, 그 당시 지구에 비록 힘은 없어도 황제의 권위를 가진 인물이 존재했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전에는 실제로 강성한 제국이 번성했을 거다.

그 제국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인류 문명의 바탕의 바탕이 된다. 우리가 석기시대라고 알던 시절에 그들은 이미 위대한 과학 문명을 건설했고, 급기야 가까운 두 행성으로 진출했으며, 그 결과 지구를 포함한 세 개의 행성을 거느리는 거대한 태양계 제국으로 발전해 갔다.

그 중심에 바로 황제가 있었다.

단군’이 개인의 이름이 아닌 대를 이은 직위이듯이, 태양계 제국의 황제도 이름이 아닌 직위로 불렸다. 그가 가진 엄청난 권력과 힘, 기술은 생명을 살리고 죽임은 물론 명을 어긴 인간을 내쫓을 수도, 타락한 도시 전체를 불태울 수도 있었다. 특히나 위에 묘사한 당시의 ‘원시부족’이나 일반인들에게 그는 두렵기 그지 없는 신과 같은 존재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상상이지만 그런 황제와 제국이 쇠퇴하게 된 계기는 신하들이 반란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권력과 지식의 독점 및 전횡을 보다 못해 일반인들에게 그 비밀을 나눠주려 했던 그들은 황제의 진노를 사게 되고, 고문과 추방에 처해진다.

그 과정에서 제국의 구심점은 붕괴되고, 화성과 행성 Z는 각자의 길을 가게 된 거다. 그러면서 수백, 수천 년이 지난 후 황제는 더 이상 아무런 권력도 갖지 않은 상징적인 존재로 변하고 말았다. 그리하여 지구, 화성, 행성Z 어느 쪽도 제국의 패권을 쥐지 못하고 권력의 중심이 무주공산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화성과 행성 Z의 힘이 절정에 달했을 때, 그들은 지구를 차지하고 제국의 정통성을 확보하려 했던 것이다. 그럼으로써 자신들이 원하는 형태로 제국을 부활시키고자 했던 거다.

그러나 그 결과는 공도동망(共倒同亡). 화성과 행성 Z의 붕괴는 물론 지구까지도 대재앙의 풍파에 휩쓸리고, 태양계 제국의 영광과 초고대 문명의 기억은 영원히 깊은 우주 공간과 바다속으로 꺼져버리고 말았던 거다.

그들이 그토록 무서워하고 또 차지하려 했던 제국 황제의 지위…. 

그 이름은 YHWH, JHVH, Jehovah 등으로 쓰고 야훼라 읽었다.

야훼를 나타내는 삼각형.

중간의 글씨는 히브리어 야훼.

그리하여 이 상징은 수만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지금까지도 제국을 기억하는 극소수의 선택된 자들에 의해 은밀하게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

이집트

 

 

수단

보스니아

온두라스

중국 시안

바티칸

영국

프리메이슨

미국

미국

프랑스

카자흐스탄

인도


그리고 반란을 일으켜 황제의 권력을 일반인과 나누려 했던 신하들은 ‘빛을 가져오는 자’, ‘먼저 깨우친 자’ 등의 이름으로 불렸다. 

이를 원어로 표기하면 루시퍼, 프로메테우스가 된다…

To be continued

여기가 기본적으로 완결이다. 에필록가 2개 더있는데 별 내용 없고 영화화 하는 이야기 그런 것들.

링크만 해놓도록 하겠다.

에필로그 1

에필로그2

예전에 너무 재미있게 보았던 글인데 딴지일보에서 이미 사라지고 없어서 어렵게 구해서 올려 봅니다.

딴지 일보 http://www.ddanzi.com 에 연재 됐던걸
탱(Taeng’s Blog)의 블로그 http://devilishfire.blog.me 에서 퍼옴

1621092

2011년에 책으로도 발간되었는데 현재 수급상황이

여의치 않아 새로운 출판사를 물색 중이다.

사진은 우원의 책을 들고 포즈를 취한 봉모 감독.

구매를 원하시는 분은 여기로…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702345

파토님 재미있는 글 감사드리고 저작권에 문제가 있으면 조치 하겠습니다.

[RESEARCH] 외계 문명과 인류의 비밀 10편, 외계인의 증거들 BY 파토

■  외계 문명과 인류의 비밀 시리즈

– 외계 문명과 인류의 비밀 1편, 2편 바로가기

– 외계 문명과 인류의 비밀 3편, 4편 바로가기

– 외계 문명과 인류의 비밀 5편, 외전, 연관 정보[달의비밀] 바로가기

– 외계 문명과 인류의 비밀 6편, 7편, 단편소설 편 바로가기

– 외계 문명과 인류의 비밀 8편, 9편 바로가기

– 외계 문명과 인류의 비밀 10편,  <외전>외계인의 증거들 바로가기

– 외계 문명과 인류의 비밀 11편, 12편, 13편 바로가기

 

 

외계문명과 인류의 비밀 Chapter 10

 

힘(power)’이란 무엇일까.

21세기 현재 힘은 많은 형태로 분화되어 있다. 금력, 정치력, 조직력, 정보력 등등 다변화된 현대 사회에 어울리는 다양한 파워가 여러 가지 형태로 얽혀 사회 속에서 작용한다.

그러나 불과 수백 년 전까지만 해도 진정한 의미에서의 힘은 권위와 폭력, 두 가지 뿐이었다. 권위는 정신적인 힘이고 폭력은 물질적인 힘인데 이 둘은 서로 별개인 경우도 있고 면밀히 상호작용하는 경우도 있다. 대상을 향한 지배력을 확실하게 발휘하려고 한다면 둘을 모두 보유해야 하며, 이를 확실하게 장악한 자는 안정된 권력과 지위를 유지하며 장기간 군림할 수 있었다. 중국의 왕조들을 예로 들 수 있을 거다.

폭력을 소유하는 방법은 비교적 간단했다. 주먹의 힘에서 시작한 원시적 폭력은 이후 병장기와 격투 기술, 그리고 군대를 통한 조직적인 군사력, 즉 ‘무력’으로 발전해 갔는데, 과거 이는 주로 리더의 개인적 전투력(항우)이나 심리적 리더십(유방)에 의해 창출되었다. 그러나 무력으로는 대상을 굴복시킬 망정 진심으로 복종하게 만들기는 어렵다. ‘칼로 일어난 자는 칼로 망한다’는 격언은 이런 인류사적 현상에 대한 오랜 경험과 관찰 속에서 만들어졌을 것이다.

한편 진정한 권위는 대상이 스스로 머리를 숙이도록 유도한다. 비록 무력 그 자체에서 권위가 생겨나는 경우도 있지만, 진짜 권위를 끌어내는 요인은 고대에서 근세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정통성‘ 또는 ‘신성함’ 이었다. 이를 통해 확보된 권위는 자체로서 생명력을 갖게 되고, 일단 수립된 권위를 타인이 무리하게 제거하려는 경우 시스템의 강력한 저항에 직면하게 되는 거다.

절대반지를 손에 쥐었던 사우론이 결국 실패한

것은 무력에 비해 부족한 권위와 정통성 때문이었다.

그런 점은 스타워즈의 팔파틴 황제도 마찬가지.

머 시작이 좀 거창하긴 했는데, 모세가 만든 그 물건이 바로 이 권위와 무력을 그에게 모두 가져다 줬다는 점을 이야기할려고 해본 소리다. 지난 시간에 말했듯이 불안정한 수십만의 난민을 다스려야 했던 모세는 외계인과의 결별 과정에서 상처받을지 모를 권위를 유지하고 실질적 무력을 보유하기 위한 수단이 절실히 필요했고, 외계인의 기술을 빌려 만든 이 ‘성궤’는 결과적으로 대성공을 거두게 된다.

성서에서는 성궤의 외형적 제원을 아래와 같이 묘사하고 있다. (출애굽기 10~21장)

조각목으로 궤를 짜되 길이는 두 규빗 반, 너비는 한 규빗 반, 높이는 한 규빗 반이 되게 하고/ 순금으로 그것을 싸되 그 안팎을 싸고 위쪽 가장자리로 돌아가며 금 테를 두르고/ 금 고리 넷을 부어 만들어 그 네 발에 달되 이쪽에 두 고리 저쪽에 두 고리를 달며/ 조각목으로 채를 만들어 금으로 싸고/ 그 채를 궤 양쪽 고리에 꿰어서 궤를 메게 하며/ 채를 궤의 고리에 꿴 대로 두고 빼내지 말지며/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둘지며/ 순금으로 속죄소를 만들되 길이는 두 규빗 반, 너비는 한 규빗 반이 되게 하고/ 금으로 그룹 둘을 속죄소 두 끝에 쳐서 만들되/ 한 그룹은 이 끝에, 또 한 그룹은 저 끝에 곧 속죄소 두 끝에 속죄소와 한 덩이로 연결할지며 /그룹들은 그 날개를 높이 펴서 그 날개로 속죄소를 덮으며 그 얼굴을 서로 대하여 속죄소를 향하게 하고 / 속죄소를 궤 위에 얹고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넣으라

위는 모세가 미장이에게 주문한 크기와 구조인데, 성서 특유의 늘어지는 문장 때문에 좀 헷갈리지만 적어도 모세의 지시가 매우 자세하고 구체적이라는 점은 알 수 있다. 대략 설명을 하자면 나무로 짠 궤짝에 금도금을 하고, 빠지지 않는 긴 막대 두 개를 고리에 끼워 들고 다니게 하고, 뚜껑 역할을 하는 속죄소 양쪽에 ‘그룹’(Group 이 아니라 Cherub 이며 케루빔이라고도 부르는 신성한 존재) 상을 붙이는 형태다.

그 결과는 이런 모습이 되는데 이것을 성서에서는 ‘언약궤’, ‘성궤’ 등으로 부르는 것이다.

성서의 맥락에서 보자면 십계명 돌판이 유태인의 신인 야훼의 손으로 새겨진 만큼, 이 성궤의 스펙과 재질 역시 유태인들의 문화나 신앙 등과 관련된 전통적인 형태를 갖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이제 아래 우원이 런던의 브리티쉬 뮤지엄에서 직접 찍은 사진을 함 보시자.

이것은 로마 공화정 시대, 즉 예수가 태어나기 직전 시대의 궤짝이다. 보는 바와 같이 상자의 모양이나 뚜껑, 두마리 그룹 등 전반적인 디자인 컨셉이 모세의 성궤와 대동소이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허나 이 시대는 로마에 기독교나 유태교 영향력이 전무했던 때다. 실은 이런 상자는 이집트 카이로 박물관에 널려 있고, 그 디자인의 기원은 바로 고대 이집트였다.

유태인의 신 야훼의 율법을 담는 언약궤가 왜 이집트 이교도의 디자인을 따라 만들어졌을까. 그건 이 성궤가 원래부터 유태인과도, 야훼와도 아무런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모세의 사상과 지식, 기술 등의 기원은 이집트/초고대문명으로 이어지는 연장선상에 있는 것일 뿐이며, 그는 토라를 쓰면서 유태인의 유일신 사상과 팔레스타인 일대의 문화적 전통, 전승 등을 종합해서 유태교라는 종교를 창시했던 것이다.

에덴동산, 노아의 방주, 아브라함 이야기 등은 그 지역에서 구전된 이야기던가, 모세가 알던 이집트 비밀 지식의 일부를 비유의 형식으로 담은 것이다(짐작하듯 노아의 방주는 화성과 행성 Z가 멸망하던 시점에 지구에 밀어닥친 재앙의 이야기다. 다만 방주는 나무로 만든 배가 아니라 발달된 기술을 통해 제작된 함선, 심지어 피난용 우주선이었을 수도 있다).

달에서 촬영된 우주선 형태의 물체.

길이 3,.3km, 높이 500미터에 달하는

이것은 혹시 대재앙 당시 사용된 ‘방주’일까.

 

그럼 이제 성궤 자체로 돌아오자. 이것이 돌판과 함께 야훼와 모세의 권위를 상징하는 물건이라는 점은 누가 봐도 자명하다. 하지만 무력과는 대체 무슨 관련이 있다는 걸까?

다음은 성서에서의 표현들이다.

아론의 두 아들이 여호와 앞에 나아가다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니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형 아론에게 이르라 성소의 휘장 안 법궤 위 속죄소 앞에 아무 때나 들어오지 말라 그리하여 죽지 않도록 하라 이는 내가 구름 가운데에서 속죄소 위에 나타남이니라 /

아론이 성소에 들어오려면 수송아지를 속죄제물로 삼고 숫양을 번제물로 삼고 / 거룩한 세마포 속옷을 입으며 세마포 속바지를 몸에 입고 세마포 띠를 띠며 세마포 관을 쓸지니 이것들은 거룩한 옷이라 물로 그의 몸을 씻고 입을 것이며… (레위기 16장 1절~4절)

보는 바와 같이, 모세의 형인 아론의 아들 둘이 성궤가 있는 장막에 함부로 들어갔다가 그만 성궤에 의해 목숨을 잃는 사건이 있었다. 이는 열왕기상과 히브리서, 역대상 등에도 등장하는데, 그들은 ‘철제 향로’를 들고 들어갔다가 변을 당하게 된다. 인용문에서 ‘여호와 앞에’라는 표현은 당시 모세를 위시한 난민들은 성궤와 야훼 신 자체를 동일시했기 때문이다.

여튼 이를 계기로 모세는 성궤에 의해 화를 당하지 않기 위한 각종 방법을 열거하고 있다. 위 인용문에서 보면 온통 세마포 일색인 ‘안전복장’이 등장하는데 그 재질이 성궤에서 뿜어져 나오는 특정한 방사선이나 독성을 중화시키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이와 유사한 기록은 출애굽기 39장에서도 찾을 수 있는데 의복의 제작 방법이 비현실적일 정도로 복잡하다는 점은 이런 생각을 다시 뒷받침한다. 한편 철제 향로가 죽음의 매개가 되었다는 점에서 강력한 전자기장이 관련된 것 같기도 하다.


현대라면이런경고판이붙어야

물건이었을까.

이렇듯 성궤는(그 내부의 에너지원인 돌판과 함께) 단지 하나님의 말씀을 담아둔 궤짝이아니라 사람의 목숨을 앗아갈 정도로 위험한 물건이었던 거다. 그리고 이는 음모론자들의 억측이 아닌, 철저히 성서의 기록에 따른 것이다.

이후 성궤는 다양한 이적을 행하고, 유태인들이 가나안/팔레스타인 지역 이민족을 쫓아내는 과정에서 실제 전투병기로도 활용된다. 아래 모세5경과 여호수아, 사무엘서 등에 실려 있는 성궤의 이적에 대해 정리해 본다.

1.    성궤를 맨 제사장들의 발이 요단강에 잠기자 요단강의 물이 상류에서 흘러내려오지 않아 건널 수 있게 됨(홍해를 가르는 것과 다소 유사한 상황)

2.    성궤를 메고 나가 소리를 지르고 나팔불자 여리고 성벽이 무너져 내림

3.    블레셋에 탈취당한 성궤가 블레셋인이 섬기는 다곤 신전에 놓여지자 다곤 상이 쓰러지고, 머리와 두 손이 잘리고 재앙이 생김. 블레셋인이 성궤를 이스라엘로 돌려보내기로 하고 국경지방인 벧세메스로 보내자 그곳 백성들은 기뻐하며 야훼에게 제사를 드렸으나 궤를 들여다 보는 바람에 ‘5만여 명’이 사망.

4.    이스라엘 건국 후 다윗왕이 성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려고 함. 수레에 성궤를 싣고 나아가다가 소들이 날뛰었고, 아미나답의 아들 웃사가 성궤를 붙잡았다가 그 자리에서 죽음.

이 외에도 유태 전승에 따르면 성궤는 스스로 공중을 날 뿐 아니라 성궤를 메고 있던 사람들도 같이 이동시켰다고 하고 유태인들이 광야에서 떠돌 때는 공중에 떠 사흘 거리를 혼자 가 버렸다고도 한다.

이런 이야기들에서 특기할 것은 성궤가 일종의 대량살상 무기와 탈것(항공기?)의 역할을 동시에 했다는 것과, 또 아론의 아들들이나 위 벧세메스, 웃사의 경우에서 보듯 적들뿐 아니라 운반하는 사람들이나 경배하는 이들도 올바른 방법으로 다루지 않으면 죽음으로 몰아넣는 위험천만한 물건이었다는 사실이다.

이래서 영화 ‘레이더스’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성궤의 뚜껑(속죄소)를 함부로 연 나치 독일군들이 내부에서 방사된 강렬한 광선을 맞아 몸이 녹거나 꿰뚫려 죽고 만다. 설마 현실에서도 이런 식은 아니었겠지만…

일견 황당한 레이더스의 이 장면은 나름 성서에 기초해 재구성한 거다.

비록 성서에서 다소 과장된 부분이 있다 하더라도, 그저 돌판을 넣은 나무 상자에 불과한 물건이 아무 맥락도 없이 이런 구체적 이적을 행하는 것으로 표현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무기로 사용되거나 날아다녔다는 등의 이야기의 적어도 일부는 진실에 기초하고 있을 거란 말이다.

성궤가 ‘분노하고 질투하고 살인하는’ 창조주 야훼의 진짜 현신이라는 가능성은 무시하고 봤을 때, 성서의 기록만을 생각해봐도 이 물건이 기원전 10세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대단한 테크놀로지를 담고 있었다는 점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을 거다. 그리고 그 기술이 모세가 직접 고안하거나 떠도는 유태 난민들이 발명한 것일 리 없다는 점에서 이집트 이전의 잊혀진 세상과 외계인들로부터 온 것이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이 성궤의 권위와 힘이 팔레스타인에서 유태인들이 자리잡고 나라를 세우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과, 주변의 이교도들에 비해 우월한 신적 능력을 과시함으로써 정신적 우위를 점하게 되었다는 점은 세계 최초의 안정된 유일신 종교인 유태교와 이스라엘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렇게 본다면, 사실상 모세에 의해 성립된 유태교 자체가 초고대 지구에 존재했던 외계인의 사상과 기술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의문이 하나 남는다. 과연 그들에게 영향을 미친 외계인은, 즉 모세가 호렙산과 시내산에서 만난 자들은 어느 쪽 외계인들이었을까. 행성 Z인가 화성인가?

이와 관련되어 이제 흥미로운 상황이 유태 땅에서 발생한다. 성궤나 야훼의 속성에서 보듯 유태교는 바탕이 대단히 형식적이고 배타적인 종교다. 최근 이스라엘 정부가 보이는 행각에서도 드러나듯 이들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선민사상으로 철저히 무장되어 있고, 어떤 의미에서 인종주의보다 심한 근본적인 우월감을 보여왔다. 이 같은 그들의 우월감은 나라가 없이 떠도는 와중에도 3천년 간 계속 이어졌는데, 스스로에 대한 ‘특별함’에 대한 확인이 바로 모세와 성궤로부터 시작된 셈이다.

그러나 이런 하나의 세계관에 대해 반기를 드는 활동이 바로 유태인들 내부에서 생겨나게 된다. 그것은 어쩌면 호전적이고도 배타적인 야훼-모세-유태교 문명의 성향에 맞서, 그것과 바탕은 같지만 다른 방향으로 발전해 온 또 다른 문명의 영향일 것이다. 달리 말하면 모성을 잃은 화성과 행성 Z간에 벌어진, 이제 하나 남은 생명의 별 지구상에서 펼쳐진 정신적 대리전이다.

그 활동은 아래의 인물에 의해 시작되었다.

 

To be continued

외계문명과 인류의 비밀

외계인의 증거들

언젠가부터 지구상으로 넘어와 진행되고 있는 외계문명 이야기… 그 나름의 흥미를 끌고 있는 건 알고 있지만 아무래도 너무 지상의 스토리로 흘러가는 느낌이 없지 않다. 그래서 오늘은 본연의 자세로 돌아와 외계인과 UFO 의 각종 증거들, 그리고 초고대 문명의 증거들에 대해 좀 알아보도록 하자.

열분들은 아마 우원의 고대 화성과 행성Z의 ‘데쓰스타’론에 대해서, 즉 달과 이아페투스가 고대 행성인들의 우주기지이자 무기였다는 점에 대해, 나름의 근거와 스토리에도 불구하고 ‘설마’.. 싶었을지도 모른다.


스타워즈의 데쓰스타

 

 

토성의 위성 이아페투스

 

그럼 이제 아래의 물건을 함 보시자.

 

 

현대의 누군가가 스타워즈의 데쓰스타를 흉내 내서 만든 모형인가? 천만에. 이것은 남아프리카의 광산 깊은 곳에서 발견된 정체불명의 물체다. 지름 2.5 센티미터 정도의 작은 금속구인데, 보는 바와 같이 적도를 지나는 주름과 그 위의 원형 구멍 등이 위 데쓰스타 및 아이아페투스와 놀랄 정도로 닮아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것이 발견된 곳은 선캄브리아기의 지층으로, 쉽게 말하자면 28억년 전의 지층이라는 사실이다. 물론 이 금속구가 30억년 가까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하기는 어렵지만, 땅이 뒤집히고 하늘이 갈라지는 대재앙의 과정에서 깊은 지층 속으로 빠져들어갔을지도 모른다.

이런 물체는 같은 곳에서 두 개가 발견되었는데, 하나는 쇠 덩어리인 반면 다른 하나는 ‘속이 비어있고’ 흰색 스폰지 같은 것으로 채워져 있었다. 과연 이 형태가 단지 우연에 불과할까…?


 

위의 물체는 드로파 스톤이라고 하는 것인데, 1938년 중국의 동굴에서 발견되었다. 20센티 정도 너비인 이 돌판들은 수백 개가 발견되었는데, 공히 중간에 구멍이 뚫려 있고 마치 레코드판 같은 가는 홈들이 파여 있다. 그러나 이 홈들은 실은 상형문자로 되어 있고 내용은 산에 추락한 외계의 우주선과 관련된 스토리다.

이 돌판은 대략 10,000년에서 12,000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 시기는 바로 우주 전쟁과 지구상의 대재앙이 있었던 때와 일치한다…

 


이 기계 부속 같은 것은 얼핏 별로 특별해 보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사진은 실은 돌 속의 X 레이 사진이다. 1961년 캘리포니아의 산속에서 발견된  이 돌은 처음에는 속이 빈 보석의 일종인 ‘정동(geode)’ 로 여겨졌으나 절단해보니 금속 물체가 나타났고, X 레이 촬영결과 위의 놀라운 영상을 얻게 되었다. 전문가에 따르면 이 크기의 정동이 만들어지는데 50만년 정도가 소요된다고 한다. 즉, 이 금속 물체는 50만년 전에 만들어지고 버려진 것이다.

 

이 비행기를 닮은 물체는 중남미에서 발견된 것인데 대략 1천년 전의 것으로 여겨지고 있으나 확실하진 않다. 이 물건은 나름 유명하기 때문에 다른 경로로 이미 본 사람도 많을 거고, 새나 벌레를 형상화했다는 주장도 제기되어 왔다.

그러나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어떤 새나 벌레도 날개가 몸통의 아래쪽에 달려 있는 경우는 없다는 사실이다. 날개가 몸통 아래에 달려 있는 경우 속도를 내거나 방향전환을 하기엔 용이하지만 무게 중심이 불안정해지기 때문이다. 특히 날개짓을 해야만 날 수 있는 새나 벌레에 몸통 아래쪽에 날개가 붙어 있다면 비행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점,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자연연계에서 볼 수 있는 날개가진 동물은 모두 이렇게 등쪽에

날개가 붙어 있다.

엔진의 힘이 비교적 약하던 초창기 프로펠러기들도

이처럼 날개가 위쪽에 붙어 있거나 ‘쌍엽’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반면 이 물건의 경우는 현대의 제트기처럼 아래쪽에

날개가 붙어 있으며 수직, 수평 꼬리날개도 따로 장착되어 있다.

 

이런 물건이 한두개가 있는게 아니다…

 

인류가 종이비행기를 만들어 날린 것도 불과 1,2백년 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할 때, 수천 년 전 중앙아메리카인들이 자연계에 존재하지도 않는 형태의 비행체 모형을 아무 맥락도 없이 제작했다고 생각하긴 어렵다.

그래서 일부 연구가들과 엔지니어들이 실험을 위해 위의 디자인을 활용한 모형 비행기를 만들게 된다.

 

잉카의 디자인에 프로펠러와 초소형 제트엔진을 장착한 이 모형비행기는 1997년 8월 시험비행에 들어갔고, 플로리다 올란도의 한 대형 주차장에서 멋진 비행에 성공하기에 이른다.

 

허나 우원은 1천년의 중앙아메리카인들이 실제로 하늘을 날았을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랬다면 훨씬 많은 증거와 진짜 비행기의 잔해 등이 발견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보다는 오히려 오랜 과거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나 그림, 모형 등을 재현했을 가능성이 더 그럴듯하다. 결국 초고대로부터의 희미한 기억인 거다.

이 외에도 많지만 가장 그럴싸하고 신비한 것들 중심으로 한번 소개해 봤다. 그럼 이제부터는 유물, 유적이 아닌 지구와 그 주변에서 실제로 암약하고 있는 외계인들의 활동 상황을 확인해 보자.

이미 이 지면을 통해서 여러 UFO 현상과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 그리고 고대의 UFO 그림 등 다양한 자료를 선보인바 있다. 그러나 오늘 보여드릴 것들은 그것들과는 좀 다르지만 마찬가지로 특별한 것들이라 하겠다.

1937년 캐나다 밴쿠버의 시청(우원은 밴쿠버에 살았고 이 위치가

어디쯤인지 안다) 근처에서 찍힌 UFO

1927년 미국 오레곤에서 촬영된 UFO

‘1870년’, 미국 뉴햄프셔의 워싱턴 산에서 찍힌 시가형의 UFO

이 자료들의 공통점은 UFO나 비행접시에 대한 관심도 컨셉도 없던 시절의 사진들이라는 점이다. UFO가 일반의 관심을 끌고 대중화 된 것은 1940년대 이후의 일이다. 결국 선사시대부터 이 시점에 이르기까지, UFO는 원시인의 서툰 손,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의 화려한 종교화와 초상화, 근대의 구식 흑백 카메라와 현대의 아이폰 동영상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형상’을 나타내고자 했던 모든 시기에 모든 수단을 통원해 표현되어 왔던 것이다. 이런 통시적 관점의 접근은 디카와 포토샵 등 온갖 영상합성 수단이 널려있는 지금과는 또 다른 무게로 UFO의 실체를 생각하도록 만든다.

한편 바로 그런 시대에 살고 있기에, 우원은 UFO 사진이나 동영상들을 함부로 믿지 않는다. 아무리 그럴싸해 보여도 조작이 너무나 쉽고, 악취미를 가진 개인들도 얼마든지 그런 작업을 시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원 자신이 UFO를 두 번이나 보기도 했지만 그런 우원의 눈도 그다지 신용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가장 믿을만한 UFO 영상은 어디서 얻을 수 있을까?

바로 NASA, 미 항공 우주국이다. 이들은 UFO의 존재에 대한 수많은 의구심과 음모론에도 불구하고 지난 수십여 년간 공식적으로 함구와 부인으로 일관해 왔다. 그러나 실은 그들이 직접 찍은 우주공간 영상에 UFO라고 부를 수 밖에 없는 물체들이 너무도 많이 기록되어 있다.

아래에 공개하는 것은 스페이스 셔틀과 아폴로 등이 임무 도중에 찍은 동영상들이다. 길이가 10분 가까이 되지만 다양한 관련 영상의 모듬 결정판이라 할만 하다. 열분들이 그간 보지도 듣지도 못했을 충격적이고 선명한 우주공간에서의 영상들이 가득 차 있고 갈수록 점입가경이니 한눈 팔지 말고 집중해서 보기 바란다.

어떠신가…?

이것들이 모두 외계의 우주선인지 아니면 우주에 살아가는 생명체인지, 혹은 지구의 비밀병기인지 먼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멀지도 않은 지구 궤도와 달 주변 등에 이토록 많은 ‘뭔가’의 활동이 일상적으로 계속되고 있다는 것, 그리고 나사와 미국 정부는 이를 뒷받침할 만한 수많은 증거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우원은 본 ‘외계문명과 인류의 비밀’ 시리즈를 SF 엔터테인먼트라고 부르고 있고 그 입장은 처음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행성 Z와 화성, 지구가 얽혀있는 이 스토리는 놀라운 자료들이 동원되기도 하지만 최소한 절반 이상은 우원의 상상력과 비약에 가까운 추론이 바탕인 흥미위주의 이야기다.

그러나 오늘 보여드린 자료들은 다르다. 우원의 스토리가 어느 정도까지 사실에 가까우냐와는 무관하게, 지구 주변에 수많은 UFO가 암약하고 있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초등학생에서부터 NASA에 이르기까지 너무도 많은 증거가 발견되고 또 기록되고 있는 것은 엄연한 진실이다.

이 수많은 현상과 증거들이, 지금은 소행성으로 산산히 부서진 행성 Z와 엄청난 재앙 속에서 급사해버린 화성, 우주적 스케일로 볼 때 지구에서 무척 가깝다고 할 이 두 천체와 과연 아무 관련도 없는 걸까…?

To be continued

예전에 너무 재미있게 보았던 글인데 딴지일보에서 이미 사라지고 없어서 어렵게 구해서 올려 봅니다.

딴지 일보 http://www.ddanzi.com 에 연재 됐던걸
탱(Taeng’s Blog)의 블로그 http://devilishfire.blog.me 에서 퍼옴

1621092

2011년에 책으로도 발간되었는데 현재 수급상황이

여의치 않아 새로운 출판사를 물색 중이다.

사진은 우원의 책을 들고 포즈를 취한 봉모 감독.

구매를 원하시는 분은 여기로…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702345

파토님 재미있는 글 감사드리고 저작권에 문제가 있으면 조치 하겠습니다.

[RESEARCH] 외계 문명과 인류의 비밀 8편, 9편 BY 파토

■  외계 문명과 인류의 비밀 시리즈

– 외계 문명과 인류의 비밀 1편, 2편 바로가기

– 외계 문명과 인류의 비밀 3편, 4편 바로가기

– 외계 문명과 인류의 비밀 5편, 외전, 연관 정보[달의비밀] 바로가기

– 외계 문명과 인류의 비밀 6편, 7편, 단편소설 편 바로가기

– 외계 문명과 인류의 비밀 8편, 9편 바로가기

– 외계 문명과 인류의 비밀 10편,  <외전>외계인의 증거들 바로가기

– 외계 문명과 인류의 비밀 11편, 12편, 13편 바로가기

 

외계문명과 인류의 비밀 Chapter 8

 

아시는 대로 본 우원 한달 간 편집장짓을 하는 바람에 본 시리즈를 포함해 연재물 집필이 중단됐었다.

이제 집어 쳤으니 다시 시작한다.

연재 재개를 기념해 먼가 멋진 말을 해 보려 했는데 안 떠오른다. 그냥 가자..

지금까지의 내용 초간단 요약.

l  옛날옛적 태양계에는 지구와 행성 Z, 화성 세 개의 문명이 있었다.

l  행성 Z와 화성은 열라 발달했지만 사이가 안좋았고 지구는 중간에 꼽사리 끼어 Z와 교류하고 있었다.

l  둘 사이에 거대한 데쓰스타를 동원한 우주전쟁이 일어나 두 별은 동시에 멸망했다.

l  와중에 지구는 새우등 터져 대홍수와 지각변종으로 기존의 초고대문명과 식민지 문명이 송두리째 붕괴되고 말았다.

너무 단순화한 느낌도 있지만 대략 이런 스토리다. 암튼 행성 Z와 화성은 이미 멸망해 버렸으니 여기서부터 무대는 지구로 옮겨질 수 밖에 없다. 고로 이제부터 몰락한 지구의 기억과 그 재건에 관련된 이야기가 이어지게 된다.

그러나 그리로 본격 넘어가기 전에 몇 가지 정리 좀 하자.

행성 Z와 화성은 정녕 완전히 사라진 것일까…? 물리적으론 그렇다. 그러나 행성 Z와 화성의 주민들도 그 과정에서 완전하게 멸망한 걸까?

그렇지 않다. 먼저 지금의 이야기 전개 과정으로 보면 우리 지구인 자체에 Z인의 피가 섞여 있다. 7편에서의 네안데르탈인과 크로마뇽인 관련 이야기가 거기에 해당한다. 한편 그렇게 섞이지 않고 혈통적 ‘순수성’을 지킨 소수의 외계인 집단이 지구상 어딘가에 존재할지도 모른다. 그들은 우리와 섞여 살아왔을 수도 있고, 나름 격리된 공간에서 눈에 띄지 않게 살아왔을 수도 있다.

특정기사 및 인물과 관계없음

또 한가지는 가능성은 두 행성이 파괴되던 순간 거기 있지 않던 Z와 화성인들이 상당히 있을 거라는 점이다. 지난 편 외전 소설에도 암시되어 있지만 우주전쟁을 치르려면 먼 거리에서의 장거리 무기만으로는 어렵다. 지상군도 투입이 되었을 거고 우주함대가 두 행성 사이의 공간에 진주해 있었을 것이다. 그 경우 함대의 승조원들은 행성들이 폭발하는 와중에도 아무 피해 없이 생존했을 것이 분명하다. 물론 정신적 타격은 엄청났겠지만.

또 다른 안전지대는 역설적으로 두 대의 데쓰스타. 이 거대한 건조물들이 완전한 무인 자동 기계였을 가능성은 전무하다고 봤을 때, 결국 무기이자 동시에 초거대 우주선으로 작동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에 탑승해 있던 사람들이 있다. 크기와 규모로 보아 최소한 수천 명 이상, 많게는 수십만 명에 달했을지도 모른다.

화성의 데쓰스타인 이아페투스는 이 스토리에 따르면 Z 폭발 후 토성 궤도까지 튕겨가게 되니, 내부에 승무원이나 군대가 있었다 한들 엄청난 진동과 충격, 가속도 속에서 살아 남았을지는 의심스럽다. 게다가 원래 이 넘의 임무는 자폭머신이었다. 그러나 화성 괴멸시 화성군 함대가 우주 공간에 주둔해 있었다면, 모성을 잃은 그들은 결국 파괴되지 않은 이 거대한 인공위성으로 재 집결했을 것이다.

Z의 데쓰스타인 달은 말할 것도 없다. 손상을 입은 바도 없고 크기는 이아페투스보다 훨씬 더 크고 게다가 식민지인 지구 궤도 위에 있다. 이런 조건이라면 내부에 수백만 명이 살고 있었다고 해도 그리 이상할 게 없는 일이다.

자, 그렇다면 화성과 Z의 이 ‘잔당’들은 과연 어떻게 됐을까?

먼저 Z부터 생각해보자. 선방으로 화성을 괴멸시킨 달의 Z 인들은 승리의 기쁨도 잠시, 자신들의 모성이 더욱 처참하게 소멸된 사실을 알게 된다. 그와 동시에 태양계 내부의 중력 균형이 흔들리면서 지구 역시 대재앙을 맞는다.

이 대홍수는 지난 번에 언급했듯 수십 년간 지속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 이유는 홍수가 폭우 같은 기상 현상에 의한 국지적인 것이 아니라 지구의 자전과 공전, 그리고 지각변동에 따른 바다의 ‘육지 집어삼킴’ 현상이었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지구상에 있던 동족들은 대부분 물에 휩쓸려 죽었고 쌓아놓은 식민지 문명도 모조리 붕괴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들이 안전한 달을 떠나 서둘러 원시시대로 돌아간 지구에 내려갈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그럼 화성인들은? 이아페투스에 재집결한 화성군의 잔존세력은 고장난 위성을 수리하면서 절치부심 재기복수를 노렸을 것이다. 그러나 전혀 손상되지 않고 크기도 훨씬 큰 달에 살아남아 있던 Z인들에 비해 숫적으로 훨씬 열세고, 또 춥고 먼 외행성계로 밀려나 있다. 그리고 역시나 재앙에 빠져 있는 지구를 욕심 낼 이유도 없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 지구와 외계와의 연계 고리는 최소 수백에서 수천 년 가까이 끊어져 있었을 거다. 그 상태에서 지구는 물이 빠지고 다시 살만한 곳이 되었겠지만 살아남은 인구는 극소수고, 문명과 리더십이 붕괴한 무주공산 상태로 수천 년이 흘러 갔다.

허나 세월이 지나면서 결국 문명은 다시 재건된다…

이집트 기자의 3대 피라미드와 스핑크스에 대해서는 수많은 설들이 난무하고, 그 중에는 억측도 많다. 최악은 피라미드의 외부와 내부의 길이 넓이 등 수치 속에 인류 멸망까지의 전 역사가 담겨 있다는 건데, 가상 SF 엔터테인먼트 음모론을 쓰는 입장에서도 이런 건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러나 무시하기 어려운 미스터리한 팩트들도 존재하는데, 바로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l  주류 지질학자 로버트 쇼크는 스핑크스의 석회암 침식도를 기초로 스핑크스가 기원전 7천년 전 이전, 즉 지금부터 9천년 이전에 만들어졌다는 주장을 내세웠고 지질학계의 공감대를 얻어냈다.

l  기원전 2500년, 4왕조 시대에 완공된 기자의 3대 피라미드는 10,500년 전 오리온좌의 배치에 맞춰 위치를 정한 것이다.

l  이집트의 피라미드 건설 기술은 3대 피라미드 건설 후 더욱 발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퇴보했다.

l  3대 피라미드 중 가장 큰 쿠푸왕의 피라미드는 BC25세기부터 AD19세기에 이르기까지 4500년동안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

이런 사실들을 종합해 보면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먼저 저 스핑크스는 아마도 대재앙이 일어나기 전에 만들어진 것이다. 즉 화성과 Z의 멸망 이전에 세워진 거란 뜻이다. 최소 9천년이라는 검사 결과는 얼마든지 2천5백 년 정도 는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그리고 석회암 덩어리에 새겨진 수많은 자국들은 쇼크 박사에 따르면 오랜 빗물에 의한 것이라지만, 홍수의 흔적인지도 모른다.

즉, 행성 Z와 화성의 멸망 이전에 지구에 살던 사람들은(그들의 정체가 뭐던 간에) 기자 지역에 스핑크스를 세우고 오리온좌의 모양을 본따 대 피라미드를 위한 3개의 기단부를 만든 거다. 그러나 예기치 않은 파국이 일어나는 바람에 그들은 결코 피라미드를 완성할 수 없었다. 그리고는 수천 년의 장구한 세월이 꿈처럼 흘러갔다.

왼쪽 끝부터 중국 장안, 이집트 기자, 멕시코의 마야, 그리고 오리온.

이 범지구적 유사성을 단지 우연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이집트 땅에 다시 문명이 수립되기 시작한 것이 언제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상형문자인 히에로클리프는 1왕조때인 기원전 3100년 전부터 이미 완성된 상태로 존재했다. 이때 이집트 특유의 회화 형식도 이미 완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정사에 따르면 그 이전 이집트는 신석기 시대로 이런 조직적인 문명의 발달은 불가능했어야 한다. 또한, 히에로클리프나 회화 형식의 중간 발전 단계, 초기 단계 같은 것이 전혀 발견되지 않고 있다. 즉 이집트 문명은 매우 빠른 시간 동안에 급속도로 만들어지고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BC 1600년경의 은허 유적지에서 출토된 갑골문.

이후의 한자와는 전혀 다른 원시적인 형태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으며 이것이 정상이다.

 

BC 3100년 경 이집트 제1왕조의 암벽화.

몸통은 정면, 머리는 측면으로 향하는 인물의

자세나 파라오의 머리를 장식하는 뱀, 매와

자칼 등 이후 3천년간 지속된 회화 형식이

이미 이때부터 완성되어 있다…

그리고 기자의 대 피라미드들이 건립된 것은 이로부터 불과 600년 후다. 급속히 발전하는 현대 기계문명 시대도 아니고, 태양신 ‘레’니 호루스니 이시스니 하던 신화 시대에서 역사 시대로 돌입한지 불과 6세기만에 이집트의 청동기인들은, 향후 45세기 동안 세계 최대의 건물로 군림하게 될 거대한 피라미드들을 말 그대로 무에서부터 창조해 냈다는 소리다.

가능한 일인가…?

그리고 이집트의 피라미드 건립 기술은 이때를 정점으로 점점 퇴보한다. 이후의 피라미드들은 규모도 작아지고 내외벽도 엉성하며, 심지어 건설 중에 붕괴되기도 했다. 이집트의 수천 년 역사 속에서 기자의 세 피라미드 이후 다시는 그런 대작을 건설해 내지 못했다는 사실은,  전반적인 기술 수준이 발전이 아닌 퇴보의 방향이었다는 사실을 명백히 보여준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이는 이집트인들이 이때 만든 문명에 ‘지속가능성’ 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들이 자생적인 문명을 쌓아나간 것이 아니라 기록과 유적의 우연한 발견 같은 과거의 기억에 전적으로 의존했기 때문일 거다. 즉 이집트인들은 사라진 문명의 기술적, 사회적 정수를 대략 흉내 내고 응용할망정 제대로 발전시켜 나갈 수는 없었던 거다.

혹은, 이집트의 신화 시대에 행성 Z나 화성의 종족들이 내려와 잠시 교류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들이 떠난 후 긴 세월이 흐르자 기술은 잊혀지고 문명은 점점 쇠퇴해 간 것 아닐까. 그 경우 이집트 신화 속의 많은 신들은 바로 이들을 지칭하는 것임에 분명하다.  

그리고 이건 단지 필자의 근거 없는 상상만은 아니다. 대재앙 이전과 이후 지구인들이 외계인들과 교류했다는 증거들은 암벽화 등의 형태로 상당히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아래는 필자가 과거 노매드 관광청에 썼던 관련 글의 일부다. 이 주제와 밀접하게 관련된 부분이니 한번 읽어들 보자.

 

 

위의 사진은 기원전 6천년 경, 즉 지금으로부터 8천년 전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사하라 사막의 타실리 지방에서 발견된 암벽화다. 이 시대는 소위 석기시대로서 돌도끼, 돌칼 등을 사용하던 시점이며 따라서 문자는 물론, 세련된 현대적 형태의 인공물이나 기계, 의복은 존재하지 않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위에 그려진 인물은 분명 일종의 투구, 혹은 헬멧을 착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게다가 자세히 보면 머리와 몸을 잇는 목 부분이 상당히 정교하게 밀폐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으며 헬멧의 외양 역시 일반적인 머리카락의 형태와는 전혀 다른 반복 무늬의 패턴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보다 중요한 것은 가슴 부분의 세로 주름인데, 이는 당시에 착용하던 털가죽이나 거친 옷감 류에서는 절대 나타날 수 없는 것으로 비단 같이 아주 얇은 실로 정교하게 짜여진 천, 혹은 비닐과 같은 상당히 매끈매끈한 재질로 만들어졌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또한 의복의 디자인도 현대의 우주복과 비슷한 일종의 ‘오버올’ 스타일로, 한마디로 우리가 알고 있는 석기시대와는 이미지상 전혀 맞지 않는 것이다.

한편 우측 상단과 좌측에는 하늘을 날고 있는 듯 한 원반 형태의 물체도 나타나 있다. 이런 것이 만약 그것만 따로 그려져 있었다면 소위 원시적인 ‘환칠’로 생각될 수 있지만 중간의 인물로 인해 자연스럽게 UFO 를 연상하게 만들고 있다. 또 잘 보이지는 않지만 좌측 구석으로 가면 또 다른 사람의 형상이 일부 보이는데, 이는 중앙의 인물에 비해 무척 생략되어 아이들의 그림처럼 단순한 선으로만 묘사되어 있다. 이 그림이 자기 자신들이라면 중앙의 인물은 분명 늘 보는 주변 사람과는 판이하게 다른 어떤 존재를 특별히 자세히 묘사하려 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이런 이상한 그림은 많다. 아래를 보자.

 

 

 

이 동굴 벽화는 약 1만 2천년 전의 것으로 이탈리아의 발 카모니카에 있다. 역시나 헬멧을 쓴 듯한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때는 구석기 시대로 아직 돌을 숫돌에 갈아 쓴다는 개념도 없던 시절인데, 생활을 위해 사용하던 도구들은 깨뜨려서 뾰족하게 만든 돌이나 동물의 뼈, 나무 등이 주종이었다.

돌이나 뼈를 가는 기술이 없다는 것은 다시 말해 뭔가를 둥그렇고 부드럽게 연마할 수 없다는 말과 같다. 그럼에도 이 인물들이 쓰고 있는 헬멧은 매우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곡선을 보여주고 있으며, 대단히 정교한 많은 돌기들을 달고 있을 뿐 아니라 어찌 보면 빛을 발하고 있는 듯도 하다. 손에도 정체를 알 수 없는 길쭉한 도구 같은 것을 들고 있는데 전반적으로 구석기 시대와 이 그림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이런 독특한 머리 형태를 가진 인물상이 결코 이들만의 작품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위 사진은 이탈리아에서 수만 킬로미터 떨어진 남미 페루의 토로 무테로에 있는 암벽화로, 위의 그림과 비슷한 시기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림 양식의 차이는 있지만 빛나는 헬멧을 쓴 듯한 인물의 머리 부분에 대한 묘사는 사실상 위와 동일하다.

이 그림에서 또한 눈 여겨 봐야 할 점은 왼쪽 아래의, 중앙의 인물이 빠져 나오고 있는 듯이 보이는 정체 불명의 물체다. 아폴로의 착륙선을 연상시키는 이 인공적인 물체는 1만 2천년 전 구석기시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기계’의 이미지를 강하게 풍기고 있다. 또한 주인공에 비해 우측의 주변 사람들의 모습은 매우 단순화되어 익숙한 스스로의 모습을 간략하게 묘사한 것으로 추측되며, 얼핏 중앙의 인물을 보고 놀라거나 도망가거나 혹은 환호하는 것처럼 그려져 있다. 

 

 

 

한편 위 그림은 오스트레일리아의 킴벌리에서 발견된 것으로 약 5천년 전의 것이다. 역시 양식의 차이는 있지만 머리에 헤드 기어를 착용하고 이 부분이 빛나고 있는 듯한 묘사는 위와 동일하다. 특히 이 그림의 경우 맨 위 그림과 같이 몸 전체를 둘러싸는 수트를 입고 있는 모습이 상당히 구체적으로 그려져 있다. 물론 그 시절에 이런 복장은 제작 기술은 물론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몸의 중앙에 있는 정체불명의 검은 장치나, 인물의 우측이나 등뒤로 연결된 호스와 유사한 물체는 역시 현대 우주비행사의 모습과 무척 유사하다.

한편, 인물이 아닌 UFO 자체를 묘사한 듯한 그림들도 많이 남아 있다. 아래는 탄자니아의 이톨로에 있는 암벽화로 그 제작 시기는 약 2만 9천년 전 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사각형 안에 있는 두 물체가 무엇을 묘사하고 있는지 증명할 방법은 없다. 그러나 동물, 산이나 나무 등의 자연, 사람 외에는 그릴 대상조차 존재하지 않았던 3만년 전이라는 시점을 생각해 볼 때, 이 대칭형 물체가 단지 고대인의 상상의 산물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다. 상상도 그 배경이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인공물 자체가 없던 시대에 이들은 무엇을 보고 어떤 상상을 하여 이런 형태를 그린 것일까.

또한 이들 형상 아래에는 마치 지상으로 쏘아져 내리는 것 같은 두 개의 굵은 선마저 그려져 있다. 이것들이 위의 ‘UFO’와 직접 관련되었다는 점은 각도상의 연관성을 통해 확인할 수 있으며, 그간 사진이나 목격담을 통해 많이 접해온 유에프오에서 발사하는 빛이나 무기 등에 대한 묘사라고 보기에 전혀 어색함이 없다. 이 모습들은 단지 우연에 불과하단 말인가.

 

 

위 그림은 약 1만 9천년 전에 제작된 프랑스의 동굴 벽화다. 말, 소, 염소, 코끼리 등의 동물이 비교적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는 가운데, 전체적인 맥락에 맞지 않는 이상한 접시 형태의 물체들이 곳곳에 그려져 있다.

아래 그림은 위의 흰 상자 속을 확대한 것이다.

 

 

왼쪽의 인간과 유사한 생물체 앞에 접시 모양을 한 비행체들이 움직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비행체들의 인공물로서의 기하학적 특성이나 형태는 현대에 관찰되고 있는 유에프오들과 기본적으로 완전히 동일한 것이다. 앞에서와 마찬가지로, 당시의 구석기인들이 이런 형태를 자발적으로 발상해 낼 가능성은 매우 낮다.

더욱이 이 인물의 형상도 분명 보통 사람과는 다르고 배와 등에 촉수나 호스가 연결되어 있거나 혹은 빛을 발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고대인들의 엉성한 그림 실력 때문이라고 보기에는 다른 부분들의 양이나 소, 말 들에 대한 묘사가 너무 정밀하다(위로 올라가서 다시 확인해 보시라). 이 사실은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은 자기가 보고 있는 것을 정확하게 표현할 능력이 있었음에도 인물을 이처럼 괴상한 모습으로 그려 놓았다는 점을 시사해 준다. 

마지막으로 아래 사진을 보자.

 

 약 7천년 정도 전에 그려진 것으로 알려진 멕시코의 이 그림은 하늘에 나타난 정체 불명의 빛을 발하는 거대한 원반과 이를 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확연하게 담겨져 있다. 아래의 팔을 벌리고 서 있는 네 사람의 자세는 느닷없는 물체의 출현에 놀라고 있는 목격자들의 감정의 일단을 보여주는데. 어쩌면 신적인 존재로서 이 비행체를 경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위의 그림을 태양으로 여길 수도 있지만 그러기에는 크기가 너무 크고 또 가깝게 그려져 있을 뿐 아니라, 표면의 둥그런 형상을 설명하기 어렵다고 생각된다.

이 중에는 대재앙 훨씬 이전의 것들도 있지만, 상당수는 10,500년 전 이후의 것들이다.  이 시리즈 1편을 기억하실랑가 모르겠지만 거기서 필자는 지구상에 나타나는 수많은 UFO와 외계인들이 우주 전역에서 몰려 올 수는 없다는 점을 전제하고, 따라서 대부분의 그들은 사실은 지구에서 열라 가까운 곳에서 오고 가고 있을 거라는 주장을 펼친 바 있다. 태양계에 문명을 가진 3개의 행성이 있었다는 이 시리즈의 스토리 자체가 사실은 거기에 기반을 두고 있는 거다.

그렇다면, 같은 이유로 저 선사시대의 외계인들 역시 화성이나 행성 Z 둘 중 하나에서 왔을 것이다. 그렇게 그들은 수시로 우리에게 영향을 줘 왔고, 또 대재앙 후에도 심심찮게 방문하며 음양으로 교류했던 거다.

어쨌거나,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이들의 도움으로 단기간에 걸쳐 놀라운 문명을 재건했던 이집트는 외계인들이 다시 떠나면서 천천히 퇴보해 갔다. 그러나 지식인들이 그들과의 교류 속에서 남긴 문서와 기록들은 제사장이나 신관들만이 접근할 수 있는 비밀스러운 장소에 수천개의 파피루스 두루마리로 남아 있었을 것이다. 진정한 의미는 잊혀져 버린 채.

이 상황은 대략 기원전 1300년경까지 계속 이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이집트 궁정에서 자란 한 이민족의 아들이 그 비밀들을 발견하고 이집트 바깥으로 들고 나오게 된다. 이 인물은 이후 그 문명적, 역사적, 기술적 비밀들을 충분히 활용하여 향후 3천년간 지구 전체에 엄청난 영향력을 끼치게 될 특정한 세계관의 토대를 만들게 된다.

그는 이렇게 생긴 사람이었다.

To be continued

외계문명과 인류의 비밀 Chapter 9

 

 

(워닝: 본문 중 기독교적 관점에서 불편한 내용들이 등장함. 엔터테인먼트 SF로 그냥 즐기시라는)

열분들 중에는 성서나 ‘이집트 왕자’ 애니메이션 등으로 모세의 이야기에 익숙한 경우도 많을 거다. 유대인의 핏줄인 이 양반은 파라오의 유대인 영아 살해를 피해 갓난아기일 때 나일강에 버려졌는데,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파라오의 딸에게 구출되어 이집트 왕국에서 자라게 된 기구한 운명의 인물이라고 한다.

그러다가 좋은 시절 다 지나고 중년인 40세에 이르러 동포가 학대 받는 걸 보고 갑자기 열 받아서 이집트인 경비병을 죽이고 도망가 유대인들과 살게 되었다는데, 이 언저리가 좀 의심가는 부분들이 없지 않으나 머 그렇다 치자. 우리 이야기에서 중요한 건 이게 아니라 모세가 어찌하여 파라오의 궁정에서 자라고 40년이나 살았다는 점이니 말이다.

어쨌든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그가 왕족의 일원으로 자랐고 당시로서는 최고 수준의 교육교양을 습득했을 거라는 사실과, 지난 편에 언급한대로 이집트 신관들이 초고대와 외계로부터 전수받은 지식과 비밀을 숨기고 있었다면 이것들에 접근할 수 있는 극소수의 인물 중 하나였을 거라는 점이다. 그러나 모세가 이집트 왕궁을 떠난 것은 40세때임에도 막상 이집트인들을 이끌고 소위 ‘출애굽(Exodus)’를 벌인 것은 그보다 또 40년이 지난 80세에 이르러서다. 성서에 따르면 그때에 이르러서야 호렙산에서 야훼의 음성을 듣고 유대민족의 해방을 결행하게 되었다는데, 그 동안은 대체 뭘 하고 있었던 건지 의문이 가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그리고는 이때부터 영화 ‘십계’등에 잘 나오는 파라오와의 담판과 그 과정에서의 온갖 기적들, 그리고 그 화룡점정으로 홍해를 가르는 초자연적인 능력을 연출해 어렵사리 유대인들을 이집트 밖으로 끌고 나오게 된다. 허나 그런 담에는 수십만 유대인들과 40년 동안 광야를 헤매다가 막상 본인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는 들어가지도 못하고 120살에 사망하게 되는 거다.

머 120살이라는 나이 문제는, 노아는 900살까지도 살았다니 그런가 보다 하자. 그러나 성서에서의 광막한 이미지와는 달리, 무슨 사하라 사막도 아니고 천천히 걸어가도 불과 몇 달이면 가로지를 시나이 반도를 40년이나 헤매 다녔다는 거는 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막상 도착한 젖과 꿀이 흐른다는 ‘약속의 땅’ (The Land of Promise) 가나안 또한 현실에서는 그런 아름다운 묘사와는 거리가 먼 그저 그런, 되려 척박한 쪽에 가까운 땅이었을 뿐이다.

그럼 이제 그런 관점에서 소설을 함 써 보자 추리를 함 해보자.

고대 이집트의 파피루스 문서

 

이집트 왕실에서 왕족처럼 호사스러운 생활을 즐기던 모세는 젊은 날 시녀와 애정행각을 벌이다가 우연히 왕실 도서관의 금지된 지역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곳에는 근엄하고 성스러우나 기본적으로 무식한 신관들이 관리하는 수천 개의 파피루스 더미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방탕한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바탕이 똑똑했던 모세는 이 책들을 살펴보고는, 직감적으로 여기에 그 시대의 것이 아닌, 혹은 인간의 것이 아닌 놀라운 지식과 기술들이 적혀 있는 것을 알게 된다. 이 기록의 엄청남에 큰 충격을 받은 그는 시녀를 품에 안은 채 쫓아 버리고, 이때부터 비밀의 도서관에 살다시피 하며 모든 내용을 공부하고 정리하고 기록하고 암기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여 20여년이 지난 마흔 살이 되자 모세는 그 기록들의 대부분을 마스터하게 된다. 그러다가 우연히 성서의 주장처럼 태생의 비밀을 알았는지, 아니면 실은 이집트인임에도 (그런 학설도 있음) 자신이 얻은 지식을 통해 파라오를 넘어 새로운 세상을 열어보려 한 건지, 아니면 너무도 놀라운 기술과 과학을 전혀 실현할 수 없는 시대적 한계에 따른 절망 때문인지, 정든 파라오의 궁정을 떠나 버리는 거다.

그렇게 시골에서 은거하던 모세에게 40년이라는 꿈 같은 세월이 흘러갔다. 그러던 어느 날, 정말 꿈처럼 외계인들이 그를 찾아왔다…

그들이 모세를 찾은 것은 자신들의 지식을 발견하고 습득한 후 암중모색 중이던 그의 존재를 알게 되었기 때문일 거다. 여하튼 이들과 호렙산에서 한참 이야기를 나눈 모세는 이집트 땅의 유태인들을 모아 대탈주를 계획하게 되는데, 이미 ‘외계문명과 인류의 비밀’을 알고 있던 모세인 만큼 자신이 대화를 나눈 상대가 진짜 유일신 야훼라고 생각하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운운하는 말에 무조건 복종했을 가능성은 크지 않을 거다.

그렇다면 모세는 왜 굳이 출애굽을 결행한 걸까?

우원이 생각하는 그 이유는 대략 다음과 같다. 먼저 인간이면서 신 행세를 하는 파라오 치하의 이집트식 정치 체제가 진보한 외계인들의 가치관에 맞지 않았을 수 있다. 그들이 원래 세운 문명은 절대자가 백성들 위에 신처럼 군림하고 지배하는 전근대적인 것은 아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글의 맥락처럼 이집트 문명이 기본적으로 외계/초고대 문명을 계승한 것이라면 그들은 수천 년 후의 엄청난 왜곡에 큰 절망감을 느꼈을 것이고, 모세로 하여금 박해 받던 사람들을 모아 새로운 가치 하에서의 진보적 문명을 건설하도록 독려했을지도 모른다.

둘째는 모세의 개인적 야심 혹은 이상이다. 앞서 말했든 그는 당시 사람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새로운 지식을 이미 갖고 있었다. 문제는 그것을 실제로 구현할 수 있는 기술과 인프라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는 점이다. 설사 원자폭탄의 원리를 깨우쳤다 한들 이를 제조하기 위한 재료와 기술이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 않은가. 그러나 이제 그것을 소유하고 있는 외계인들이 나타났다. 이에 모세는 스스로를 정점으로 하는 새로운 세계의 건설을 노렸을지도 모른다. 어려서부터 항상 열등감을 안고 살 수 밖에 없던 파라오의 이집트보다 훨씬 위대한. 야심과 이상이 적당히 버무려진.

어쨌거나, 그런 모종의 작당을 통해 모세는 외계인들의 힘을 빌어 온갖 기적과 조화를 불러 일으키고 홍해를 갈라 유대인들을 탈출시키기에 이르는 거다.

요렇게

 

하지만 이 지점에서 새로운 문제가 시작된다. 외계인들의 힘을 믿고 수십만 난민을 이끌고 일단 이집트 땅을 벗어난 모세는 3개월 후 시나이 산에서 그들과 다시 회합을 갖게 된다. 향후의 계획과 권력관계 등을 논의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 회합이 난항이었던 거다.

이런 사실은, 흔히 아는 바와는 달리 여든 살의 모세가 회합을 위해 시나이 산을 장장 일곱 번이나 오르내렸다는 점에서 이미 드러나고 있다. 아래는 성서에 드러난 그 과정이다.

1회 : 하나님이스라엘 백성이 자신과 언약을 맺을 의향이 있는지 타진 (출애굽기 19:3)

2회: 모세는 언약의 의향을 전달하고, 하나님은 셋째날에 자신이 시나이 산 위로 강림할 것을 예고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산 기슭으로 소집 (출 19:8)

3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시나이 산에 오르지 않을 것을 다시 엄명 (출 19:20)

4회: 하나님, 모세에게 여러 가지 다른 율법을 줌 (출 20:21)

5회: 하나님. 모세에게 성막, 제사장, 제사법 등에 대해 알려주고 돌판 두개에 십계명을 써줌 (출 24:13, 40일간 체류)

6회 : 모세, 하나님께 금송아지 숭배와 관련한 이스라엘의 죄를 용서하도록 간청 (출 32:31)

7회 : 하나님, 돌판 두개에 십계명 다시 써줌 (출 34:4, 40일간 체류)

(성서 출전이므로 기독교적 표현을 사용)

여기서 주목할 만한 부분은 두 번째 회합에서 외계인들이 자신들의 위용을 일단 유대인들에게 드러내 보이고, 이어 일반 백성들은 시나이 산에 오르지 못하게 함으로서 자신과 자신이 선택한 모세의 신성함과 권위를 세웠다는 사실이다.

시나이 산의 위용. 척박한 돌산이지만 포스는 있다…

 

머 여기까지는 대략 일이 잘 풀린 듯 하다. 그러나 3회 언저리부터 모세의 리더십에 대한 의문이 생겨난다. 모세와 외계인들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개별적으로 시나이 산에 오르려는 자들이 생겨나고, 여기에 대해 다시 한번 단속을 주문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4회차에서 40일간 체류하는 과정에서는 각종 논쟁 혹은 재교육이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저 산의 생긴 꼴을 보면 80먹은 노인이 아무 대책 없이 지팡이 하나 짚고 올라가서 40일을 연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봤을 때, 이때 외계인 우주선에 탑승하여 있었거나 어딘가를 같이 갔다 왔을 것이다.

그리고는 일껏 계명이란 걸 가지고 내려오니 지상에서 기다리던 유대인들은 어느새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기고 있었다.. 라는 것이 성서의 이야기지만 금송아지 건은 아마 비유였을 거다. 스스로 신이라고 주장하며 접근하지 말라고 명령하는 정체불명의 존재와, 40일 동안이나 연락이 끊어진 채 산속에서 내려오지 않는 늙은 수장. 그런 상황 속에서 종교적, 정치적 논쟁이 남은 자들 사이에서 벌어지지 않았다면 되려 이상한 일이니 말이다.

암튼 내려오다가 이런 사실을 알게 된 모세는 십계명이 적힌 돌판을 집어 던져 깨버렸다는데, 보통 여기까지만 알고 있지만 실은 분노한 모세는 내려오자마자 ‘금송아지를 섬긴’ (반대파) 3천 명을 숙청해 버리는 말 그대로의 대학살을 자행한다. 모세가 이 무리 속에서 가진 종교적 정치적 권위가 어떠했다는 것과, 또 이를 지키기 위한 그의 집착, 나아가 타고난 성정의 잔인함이 어떠했는지를 암시하는 대목이다.

그런 다음 다시 시나이 산에 올라 40일을 빌어 문제의 돌판을 다시 받아 오는데, 그 자리에서 엄청난 책임 추궁과 함께 많은 문제제기와 다짐과 약속 등이 있었을 거라는 점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역시 열분들이 대략 알고 있던 것과는 달리 돌판에는 소위 십계명이 1,2,3 하는 식으로 정리되어 있지 않다는 거다. 출애굽기 20:1~7 절은 돌판에 적혀 있던 내용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너희 하느님은 나 야훼다. 바로 내가 너희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낸 하느님이다.

너희는 내 앞에서 다른 신을 모시지 못한다. 너희는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 위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어떤 것이든지 그 모양을 본떠 새긴 우상을 섬기지 못한다. 그 앞에 절하며 섬기지 못한다. 나 야훼 너희의 하느님은 질투하는 신이다. 나를 싫어하는 자에게는 아비의 죄를 그 후손 삼 대에까지 갚는다. 그러나 나를 사랑하여 나의 명령을 지키는 사람에게는 그 후손 수천 대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은 사랑을 베푼다.

너희는 너희 하느님의 이름 야훼를 함부로 부르지 못한다. 야훼는 자기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자를 죄없다고 하지 않는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켜라. 엿새 동안 힘써 네 모든 생업에 종사하고 이렛날은 너희 하느님 야훼 앞에서 쉬어라. 그 날 너희는 어떤 생업에도 종사하지 못한다. 너희와 너희 아들 딸, 남종 여종뿐 아니라 가축이나 집 안에 머무는 식객이라도 일을 하지 못한다. 야훼께서 엿새 동안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드시고, 이레째 되는 날 쉬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야훼께서 안식일에 복을 내리시고 거룩한 날로 삼으신 것이다.

너희는 부모를 공경하여라. 그래야 너희는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 주신 땅에서 오래 살 것이다. 살인하지 못한다. 간음하지 못한다. 도둑질하지 못한다. 이웃에게 불리한 거짓 증언을 못한다.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못한다. 네 이웃의 아내나 남종이나 여종이나 소나 나귀 할 것 없이 네 이웃의 소유는 무엇이든지 탐내지 못한다.”

이상과 같은 내용을 이후 교회에서 10개의 계명으로 정리, 분류하게 된다. 그 구체적인 순서와 내용은 개신교와 가톨릭이 좀 다른데 그것은 유태교인인 필론이 구분한 것과 이후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구분한 것을 각각 개별적으로 따르고 있기 때문. 암튼 돌판 원문에 보면 수많은 제약과 벌칙 등이 열라 폭압적인 표현들로 수록되어 있고, 복종과 사랑, 숭배가 강요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처음에는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나는 질투하는 신이다’ 와 같은 표현으로 다른 신이 존재하는 것을 암시하다가 뒤에는 스스로 우주의 모든 것을 창조한 창조주임을 주장하고 있는 등, 내용이나 문장의 앞뒤 논리적 관계가 깔끔하지 못하며 모순적임을 알 수 있다. 신의 문장은 고사하고 외계인의 문장으로도 그리 격에 맞지 않는다.

허나 이보다 더 의문스러운 것은, 진보한 외계인들이 굳이 왜 그 시대 인간들의 수준에나 어울리는 이런 공포스러운 율법과 무조건적 숭배를 강요했느냐는 거다. 이런다고 자기들한테 과연 무슨 이득이 있었을까.

바꾸어 말하자면, 이런 강압적인 윤리적 종교적 규범을 통해 이익을 얻는 자는 누구였을까…?

토라

 

여기서 우리는, 단지 이 외계인 시리즈뿐 아니라 세계 역사와도 깊은 관련이 있는 한 대목을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다들 알다시피 성서는 창세기로 시작해서 요한계시록으로 끝을 맺는 66권의 장대한 기록이다. 여러 저자들이 쓴 글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고(기독교 일각에서는 저자들에게 성령이 내렸으므로 신이 직접 썼다고 하고 ‘성서 무오류성’을 주장하기도 하나 예수의 행적을 다룬 4대 복음서 안에서만도 사실관계의 모순이 숱하게 등장) 크게 구약 39권과 신약 27권으로 나누는데, 그 분기점은 바로 예수의 탄생이다.

사실 기독교 신학의 입장과 무관하게 냉정한 관점으로 본다면 구약과 신약은 전혀 다른 철학을 다루고 있는 두 개의 다른 책이다. 이 다른 철학의 구약 쪽 중심이 되는 것이 위 돌판의 내용, 즉 배타적 유일신앙과 종교 및 생활 규범의 제시 및 그에 따른 보상과 처벌을 논하는 ‘율법’이다(이것이 신약에 이르러서는 예수에 의해 사랑과 소망, 관용과 용서 등의 인간적인 관점으로 무게 중심이 바뀌게 되는 거다).

이 구약성서 중에서도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이 바로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의 첫 다섯 편인데, 이를 토라(Tora), 혹은 ‘모세오경’ 이라고 한다. 이렇게 부르는 이유는 다름아니라 이 다섯 편의 저자가 바로 모세이기 때문이다(다른 신학자들에 의해 이후 편집, 첨삭되었다고도 함).

이 부분은 모세가 중요한 다섯 개의 경전을 썼다는 기술적 사실에서 끝나지 않는다. 이 다섯 개의 경전 속에, 아니 실은 창세기와 출애굽기 두 편 안에 천지창조에서부터 에덴동산에서의 추방, 소돔과 고모라, 노아의 방주, 아브라함, 카인과 아벨, 출애굽 등으로 대변되는 우주와 인간의 탄생과 원죄의 발생, 인간의 몰락, 십계명 등 유태교와 기독교, 나아가 이슬람교의 세계관의 뼈대를 이루는 주요 사건과 철학들이 망라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유태교와 기독교(신,구교, 성공회, 동방정교를 비롯한 모든 기독교계 종파 포함)그리고 역시 토라를 기본경전으로 삼는 이슬람교는 공히 모세라는 야심적 일개인에 의해 창시된 거나 다름 없는 것이다…

물론 모세의 원래 목적이 이렇듯 세계적 종교들을 창시해서 수천 년을 존속시킨다는 것은 아니었을 게다. 그가 필요했던 것은 ‘반신반인’인 파라오와 이집트의 기존 신들을 대신할 새로운 유일신 야훼의 신화, 그리고 그 대리인으로서 자신의 권위였다. 이를 통해 그는 아마 이집트의 비밀 문서들을 통해 접하고 꿈꿔왔던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려 했을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미래를 향한 비젼과 개인적인 권력욕이 적당히 섞인 형태로 말이다. 이런 그의 의도와 이집트 문명에 대한 외계인들의 환멸이 적절히 맞아 떨어진 거다.

그러나 그 실현 과정에서 다시 상황은 어긋나게 된다. 정신적으로 진보한 외계인들에게는, 아무리 통치와 질서를 위한 수단이라 한들 모세의 ‘질투하는 신 야훼’ 드립이나 율법과 상벌, 반대파에 대한 무자비한 학살 등이 맘에 들었을 리가 없다.

그래서 그들은 참다 못해 모세에의 협조를 거부하고 그만 떠나버리고 만다. 그날로부터 계속되는 40년간의 방랑은 이를 통해서만 설명이 가능하다. 모세와 유대인들의 ‘약속의 땅’ 행이 큰 차질을 빚게 된 거다.

여기에는 두 가지 시나리오가 있다. 먼저, 약속의 땅이 애당초 지금의 팔레스타인 일대 가나안 지역이 아니었을 가능성이다. 물론 ‘이집트의 강(나일강을 의미)에서 유프라테스강 사이’라는 약속의 땅의 구체적인 지역이 출애굽기에 등장하고 이 땅은 이미 창세기에 아브라함과 그 아들 이삭, 손자인 야곱에게도 약속되었던 바 있으나, 이 내용의 필자가 바로 모세 자신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어디까지가 사실일지는 매우 의심스럽다.

그렇다고 보면 이 지역은 어쩌면 외계인들만이 데려다 줄 수 있는 매우 먼 어느 지역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외계인들과의 공조가 끊어진 마당에 모세에게는 수십만에 달하는 유랑민 집단을 그 약속의 땅에 데려갈 수 있는 아무런 정보도 힘도 없었던 것이다.

이를 통해서, 걸어서 몇 달이면 충분할 거리를 40년 동안이나 헤매고 다닌 출애굽기의 미스터리가 풀린다. 그리고 막상 도착한 가나안에도 약속된 땅이 기다리던 것이 아니라 이미 그 지역에 살고 있던 원주민들과 열라 싸워서 점령해야 했다는 점이나, 그리고도 얼마 후에 결국 쫓겨나 수천 년이 지난 최근에 이르기까지 그 땅을 다시 차지하지 못했다는 점도 설명이 된다.

결론적으로, 그들이 도달한 팔레스타인 지역은 유태인들이 애초에 약속 받은 옥토가 아니었다. 그들은 어딘지 모를 그곳에 결국 가지 못했고, 척박하고 건조하며 이집트에서 얼마 떨어지지도 않은 곳에서 누구보다도 힘들게 생존을 위한 투쟁을 벌여야 했을 뿐이다. 젖과 꿀이 흐르는 그곳은 토라의 저자 모세에 의해 사후에 짜맞춰지고 윤색된 이야기일 뿐인 것이다…

모세가 이끄는 유태인들은 이 빨간 선을 따라

시나이 반도를 지나 가나안 땅으로 들어갔다.

고작 남한 크기만한 이 지역을 통과하는데

40년이라는 세월이 걸린 이유는 원래의

약속의 땅’ 계획이 틀어지고 전혀 새로운

계획과 전략을 수립, 시행하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일까.

 

그러나 모세는 바보가 아니었다. 외계인과의 공조가 흐트러지고 자신이 이끄는 수십만 난민에게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된 것을 알았을 때, 그는 자신의 권위와 권력을 유지하고 향후에 유용하게 써먹기 위한 하나의 도구를 준비하게 된다. 이 도구를 만드는 원리는 이미 파라오의 궁정에서 습득했지만 필요한 것은 재료와 기술이었고, 그것은 외계인들의 힘을 빌릴 수 밖에 없었다.

아마 그것은 두 번째 40일간의 회담을 통해 얻어냈을 것이다. 두 번째 돌판을 가지고 산을 내려왔을 때는 첫 번째의 경우와는 달리 모세의 얼굴에서 광채가 나서 마주보기가 두려웠다(출 34:29~30)는 기록이 남아 있다. 따라서 두 번째 돌판 자체, 혹은 그것과 함께 가지고 온 물건 중 당시의 인간으로서는 얻을 수 없는 모종의 강력한 에너지원이 포함되어 있었을 거라고 상상할 수 있다.

그리고 두 번째 가져온 돌판에는 첫 번째 외에 추가적인 글들이 실려 있는데, 그 중 특기할 것은 이전과는 달리 ‘내가 네 앞에서 아모이 사람과 가나안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을 쫒아내리니’ (출 34:11) 에서 보듯 주변의 구체적인 지명이 갑자기 등장한다. 이것은 외계인들과의 약속이 어그러진 후 모세가 현실적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일부러 채워 넣었을 것이다.

암튼 이렇게 다시 돌아온 모세는, 하나님의 손가락으로 새겨진 야훼의 구체적 증표인 성스러운 돌판과 새로이 제작한 모종의 도구를 통해 지도자로서의 권위를 유지하게 된다. 그런데 이것들이 부여한 것은 단지 정치적, 정신적 권위만이 아니었다. 이것이 가진 ‘물리적 힘’을 통해 모세는 이후 수십 년 간 절대적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고, 또한 돌판에서 약속되었듯이 결국은 팔레스타인 지역의 많은 원주민 부족들을 물리치고 이스라엘을 세우게 되니 말이다.

그 도구는 바로 아래의 것이었다.


To be continued

예전에 너무 재미있게 보았던 글인데 딴지일보에서 이미 사라지고 없어서 어렵게 구해서 올려 봅니다.

딴지 일보 http://www.ddanzi.com 에 연재 됐던걸
탱(Taeng’s Blog)의 블로그 http://devilishfire.blog.me 에서 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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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에 책으로도 발간되었는데 현재 수급상황이

여의치 않아 새로운 출판사를 물색 중이다.

사진은 우원의 책을 들고 포즈를 취한 봉모 감독.

구매를 원하시는 분은 여기로…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702345

파토님 재미있는 글 감사드리고 저작권에 문제가 있으면 조치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