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계 문명과 인류의 비밀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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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문명과 인류의 비밀 Chapter 11
불길함의 상징 화성.
이너넷엔 이런 ‘쥐괴물’ 화성인 그림도
있더라는. 놓칠 수 없는 아이템…
…아마도 이 글을 계속 읽어온 열분들은 은연중에 화성은 나쁜 넘, 행성 Z는 좋은 넘으로 여기는 경향이 생겼을 거다. 그 이유는 우원이 행성 Z를 대재앙 전의 지구문명과 연관짓고 식민/혼혈 문명의 바탕으로 상정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화성은 지구/ Z 연합군과 태양계의 명운을 걸고 싸우는 숙적으로 그려졌다.
머 그렇게 이야기를 끌어갔으니 사실이라고 치자. 하지만, 그래서 대재앙 후에도 인류는 항상 행성 Z와만 관계했던 걸까? 물론 Z인은 달에 진주했기 때문에 가깝게 있고 화성인들은 이아페투스에 있었으니 열라 멀리 있다는 것이 이 글의 설정이다. 또 이들이 대재앙 직후에는 굳이 지구에 찾아올 이유가 없었을 거라는 점도 나름대로 설명했었다.
그러나 수천 년 세월이 지난 다음에까지 그 상황이 이어져야 할 이유는 없을 거다. 달이나 이아페투스가 아무리 크고 잘 만들어진 우주기지라 한들 결국 인공물이다. 진짜 흙과 돌과 풀과 물로 만들어진 행성의 생명력, 생태계 시스템이나 자정능력을 충분히 갖출 수 있었을 리 없다. 시간이 지나고 인구가 늘어나고 그 속에서의 사회가 다변화되면서 리소스는 점점 줄어들 수 밖에 없다. 게다가 태양빛이 충만한 표면이 아닌 구조물 내부에서 살아야 한다는 점은 아무래도 생물의 자연스러운 서식 조건은 아니다.
…말 나온 김에 달과 이아페투스 표면에 존재하는 기계문명의 흔적을 좀 더 살펴보고 넘어가자. 아래는 달 표면에서 찍힌 탑 내지 성의 사진이다.
이런 구조물은 달의 여러 곳에서 발견되는데, 아래의 것은 미국과 러시아가 하나의 탑을 다른 각도에서 찍은 거다. 달 표면 곡률과 비교할 때 높이는 수 킬로미터로 추정된다. 이런 것을 자연물이라고 주장한다면 기자의 피라미드도 그냥 산이다…
밑은 위와 유사한 (어쩌면 동일한) 탑의 사진이다. 디테일이 보이지 않도록 NASA 에 의해 미리 지워진 것으로 보인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런 거대한 탑이 아이페투스 표면에서도 발견되었다는 사실이다. 태양계 규모의 교신을 위한 안테나였을까…?
암튼, 이렇게 삭막한 인공행성에 살던 그들은 결국 지구에 다시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옛 고향을 연상케 하는 아름다운 자연과 풍요로움을 갖춘 푸른 행성… 태양계에 단 하나밖에 남아 있지 않은 살아있는 별. 이제 그런 지구의 자원을 활용하고 그 속에서의 영향력을 키워 가는 것은 언젠가는 바닥날 우주기지의 자원과 그들 자신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대재앙 수천 년 후 이집트와 그 모태의 문명에 영향을 준 자들은 행성 Z인이었을까 화성인이었을까? 이를 밝혀낼 어떤 단서라도 남아 있는 것일까.
초고대 문명의 기원에 대해 그래험 핸콕, 로버트 보벌, 리처드 호글랜드 등은 화성에 이집트 기자의 것과 비슷한 피라미드가 있고, 화성의 ‘인면암’ 또한 스핑크스의 얼굴과 닮았기에 이집트 문명은 화성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하지만 결론과 무관하게 우원은 그런 식의 근거들은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편이다.
그들이 주로 내세우는 것은 남아있는 외계 ‘유적’과 지구상의 유적과의 외견상의 유사함과 소위 ‘성스러운 기하학(Sacred Geometry)’ 이라고 불리는 지형 지물간의 위치나 각도들이다. 이 각도들이 지구상의 고대 유적지들과 배치 면에서 일치한다는 주장인 거다. 그러나 이는 일견 그럴싸하지만 자연이 만든 우연일 여지도 높다.
예컨대 구 안에 정사면체를 채워넣었을 때 구와 정사면체의 밑면이 만나는 지점은 북위와 남위 19.5도다. 이 각은 소위 성스러운 우주의 비밀을 담고 있는 것으로 이야기되며 이스라엘 국기의 도안이자 유태인의 상징인 ‘다윗의 별’ 도 이를 의미한다고 한다(모세의 비밀스러운 지식이 떠오르는 부분)
그러나 19.5도에 성스러운 비밀이 있고 없고를 떠나, 아래와 같이 울퉁불퉁한 지형에 직선을 덧입히고 많은 숫자들(이 경우는 이 지형이 존재하는 화성의 위도)와 다양한 수학 공식을 대입한 후 그 속에서 19.5 도를 찾는 작업은 좀 문제가 있다. 이런 식으로는 연구자가 ‘보고 싶은’ 숫자라면 뭐든지 발견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의 경우도, 아주 특별하고 자연물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것들(위의 탑 사진들이 그 경우) 외에는 광선과 낮은 해상도가 만들어낸 착각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70년대 바이킹에 의해 촬영된 인면암.
당시의 해상도와 기술로는 마치 인간의
얼굴같이 보였다.
글로벌 서베이어가 90년대 말에 촬영한 인면암.
특이한 사각 해자 구조는 보이지만, 인간의 얼굴
이라고 주장하기에는 한눈에도 무리다.
‘보고 싶은 것을 보는’ 대표적인 예. 왼쪽 흐릿한 화성표면의 지형에
선을 그리고 색을 넣어 이집트 공주의 얼굴을 만들어냈다.
그래서 이런 불충분한 ‘물증’들을 보충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역사적, 문헌적인 증거들인데, 이런 점은 일반적인 역사를 기술할 때도 마찬가지다.
일단 명확한 사실 중 하나는, 이집트 수도 카이로의 옛 지명 ‘엘 카이라(El Kahira)‘가 바로 ‘화성’이라는 의미란 점이다. 왜 이집트의 수도 이름이 굳이 화성이 되어야 했는지는 반드시 거기 따른 역사적 맥락이 있기 마련이다. 세종시를 아무 이유도 없이 ‘목성시’로 부를 수는 없는 일 아니냐. 머 수원을 삼성시로 바꾸자는 사람도 있긴 하더라만…
또 한가지는 로마 역사가 리비우스의 아래와 같은 언명이다.
로마인들은 그들의 아버지와 로마 제국의 아버지가 다름아닌 화성이라고 공언한다
(The Roman people profess that their father and the father of their empire was none other than Mars)
– 초기 로마의 역사(The Early History of Rome). T. Livius 저.
리비우스는 BC 59년에 태어나 AD 17에 죽었으니 공화정 말기에서 제정 초기를 살았고 유명한 로마 역사가인 타키투스보다 한세기 정도 이른 시대에 활동한 사람이다. 로마의 전성기를 살아가던 지식인인 그가 아무 이유도 없이 저런 황당한 말을 내뱉을 리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집트 ? 그리스 ? 로마는 문명적으로 연장선상 하에 있었다.
또한 이집트에서는 화성을 ‘죽음의 별’ 이라고 불렀다. 이건 어쩌면 이집트인들이 화성의 불행한 역사를 직접 전해 들었기 때문에 붙인 이름은 아닐까. 한편 그리스와 로마에서 화성은 항상 전쟁의 신이었고(고대의 전쟁은 지금과 같은 참혹함과 잔인함의 이미지 외에 영웅적인 풍모도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자), 바빌로니아에서는 네르갈이라고 했는데 이는 전쟁의 왕, 위대한 영웅, 큰 집의 주인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였다.
이렇게 보면 전쟁의 신 마르스는 불길한 재앙과도 결부되지만, 이를 극복하고 운명을 대적하는 영웅의 이미지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건 철저하게 부정적이라고 할 ‘사악함’같은 느낌과는 좀 다른 것이다.
이 맥락에서는 이제 고대 이집트에 잊혀진 기술과 지식을 전수한 이들은 오히려 행성 Z 보다는 화성인들이라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게 된다. 재앙 이전 인류와 보다 긴밀하게 관계한 것은 Z 였다. 그러나 대재앙 후 이집트인들에게 먼저 접촉한 것은 화성인들이었던 거다.
왜일까? 그것은 행성 Z인들에 비해 화성인들은 모든 것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거대한 달을 보유하고 있는 Z인들은 생활에 더 나은 조건을 구비하고 있었고 필요하다면 그 속에서 농사도 짓고 뭐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화성인들은 춥고 먼 토성 궤도에 작고 고장난 자폭머신 하나를 가지고 있을 뿐이었고, 모성인 화성이 남아있긴 했지만 초토화된 표면은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거칠기만 했다.
그래서 그들은 먼저 지구에 눈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멸망의 충격을 어느 정도 추스리고, 화성의 지하에 기지도 하나씩 건설해 가면서 수천 년간 물리적으로나 심정적으로도 조금씩 지구에 가까워졌을 거다. 그리고는 결국 ‘신’을 자처하며 이집트의 초고대 문명을 세우고, 기술과 건축술을 전수하고, 파라오의 절대왕정을 지원하고, 모세와 교류하고, 그에게 강력한 무기를 줘서 유태인들을 빼내오도록 한다. 그런 것을 보면 화성인들은 전쟁의 신이라는 이미지에 걸맞게 다소 호전적이고 제국주의적인 존재들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원래 인류는 행성 Z와 교류하고 있었는데 대재앙 후라고 해서 쉽사리 화성인들과 교류하는 게 가능했을까? 예컨대 피라미드와 스핑크스의 기초는 이미 대재앙 전, 즉 Z의 문명적 영향하에 만들어졌다고도 우원 스스로 기술했었다.
기자의 세 피라미드의 기초는 대재앙 직전인 기원전 10,500년경의 오리온좌에 맞춰져 있고, 이것은 행성 Z인의 영향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피라미드가 최종적으로 완성된 것은 기원전 2500년경이다. 그렇다면 Z 인이 만들어놓은 기단 위에 화성인의 기술과 영향을 통해 피라미드를 마저 세웠단 말인가?
이것의 논리적인 답은 하나 밖에 없다. 그것은 행성 Z와 화성의 문명이 서로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유사한 바탕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나중에는 많이 달라졌지만 기본적으로 같은 역사와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었던, 한 가지에서 갈라져 나온 두 개의 문명이었던 거다. 지구까지 포함해서 말이다(이 이야기는 나중에 더 하자).
그럼 행성Z 인들은 지구에 무관심했던 걸까? 물론 그렇지는 않았다.
…이제 지난 10편의 마지막 장면으로 돌아와 보자.
‘Battesimo di Cristo’ by Aert de Gelder (1710)
18세기에 그려진 예수의 세례장면에
UFO가 등장하고 있다.
모세로 대변되는 경직되고 잔인하고 엄중한 사고방식이 지배하던 유대에 한 젊은이에 의해 변화의 단초가 던져졌다.
그는 모세가 만든 세상을 극복하기 위해 나타난 사람이었고, 모세만큼이나 베일에 가린 삶을 산 인물이었다. 10대 초반부터 죽기 3년 전인 서른 살에 이르기까지 그의 행적은 알려진 게 거의 없고, 일설에 따르면 중동과 인도 지역 등을 다니며 배움을 구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그가 만난 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성장한 유태교의 세계관과는 크게 다른 어떤 것을 갖고 돌아왔다. 경직되고 보수적인 율법으로 묶여있던 시절에 혁명적이라고도 할 사랑과 용서라는 급진적 개념을 들고서 말이다.
물론 비슷한 관점을 설파한 사람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많았다. 그러나 그의 가장 큰 차이는 말과 가르침만이 아니라, 모세의 것을 능가하는 ‘기적’또한 갖고 돌아왔다는 점이다. 그 기적의 성격도 모세의 경우와는 반대였다. 모세의 기적이 파괴와 죽음(전쟁, 화성)과 관련된 것이었다면 그의 기적은 치유와 부활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 두 상반된 세계관, 그리고 그것이 불가사의한 기적의 형태로 표출되었다는 사실. 무엇보다도 이 두 가지 성향이 향후 끊임없이 충돌하며 세계 역사를 실제로 끌고 왔다는 점.
그렇다. 모세와 예수의 ‘신’은 실은 전혀 다른 존재였다. 비근한 기술과 능력을 가졌으되 가치관을 달리하는 두 신적 존재.
예수는 모세와 화성의 가치관이 지배해가는 지구 문명의 방향을 바꾸가기 위해 나타난 행성 Z의 제자였던 것이다…
To be continued
외계문명과 인류의 비밀 Chapter 11
화성표면의 돌무덤. 저것이 과연 자연 지형일까.
아래 두 사진은 지구의 유사한 장소들
자, 지난 시간에 모세와 예수가 다른 편이란 이야기에서 대략 끝을 맺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모세의 세계관으로 대변되는 구약성서와 예수로 일관하는 신약성서는 전혀 다른 내용과 철학을 가진 두 개의 책이다. 이 두 사상이 기독교라는 이름으로 통합된 것은 단지 예수가 유대에서 태어나 활동했기 때문에 무슨 주장을 하든지 결국 유대교의 전통과 절연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또 예수 쪽 입장에서도 아예 엉뚱한 걸 들고 나오는 분위기 보다는 유대교의 연장선상에서 개혁을 꾀했다고 비치는 것이 정통성이나 뿌리와 관련된 이점이 있었을 거다.
여하튼 이렇게 모세와 예수는 유대, 나아가 로마, 더 나아가 유럽 전체에 걸쳐 보수와 진보, 우파와 좌파를 상징하는 두 세계관을, 그러나 기독교라는 하나의 종교 형식 속에서, 전하기에 이른 거다.
이렇게 모세와 예수를, 그리고 그 후예들을 논함에 있어서 중요한 점은 모세가 화성인이고 예수는 행성 Z인라거나 그 후예들이 혈연으로 계속 엮어졌다는 뜻이 아니다. 모세와 예수는 지구인이고, 단지 화성과 행성 Z의 가치관과 기술(기적) 등을 전하기 위해 선택된 사람들일 뿐이다.
이런 뜻은 아니라는 거다…
그렇게 이들이 미친 영향은 지구인들의 사회와 문화의 가치이다. 그 시대 이후 언제나 세상은 둘 사이의 투쟁으로 점철되었고 역전과 역전을 거듭해 왔는데, 근대 이전까지는 물론 지금까지도 화성의 근소한 우세로 이어지고 있다. 심지어 기독교의 경우도 예수의 가르침의 핵심을 금새 망각한 채 화성인적인 세계관으로 점철된 보수적 지배주의에 빠지고 말았으니.
그렇다면 행성 Z에 비해 화성인이 이토록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이유는 뭘까.
첫째는 그들이 지구에 먼저 개입했기 때문이다. 선민사상에 바탕하여 오랜 세월 지속되어온 유태인들의 생존력과 정치, 경제적 영향력은 이미 오래 전 모세에 의해 씨가 뿌려진 것이다. 당시 유태 땅은 비록 지구상의 힘없는 작은 지역에 불과했지만, 거기에서부터 발현될 영향력을 화성인들은 이미 꿰뚫어보고, 계획하고 있었다. 그 증거는 실제로 모세와 팔레스타인 땅을 기반으로 유대교, 가톨릭, 이슬람, 개신교가 발흥하여 세계의 대부분 지역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숨길 수 없는 사실에서 찾아볼 수 있다.
행성 Z 조차도 그 전통 속의 인물을 대리인으로 내보내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팔레스타인 땅과 모세의 사상이 가진 가능성과 잠재력은 거대했던 거다.
둘째는 화성인들이 공포를 활용하기 때문이다. ‘전쟁의 신’의 카리스마와 두려움은 오랜 세월 이집트, 팔레스타인, 그리스, 로마 등 지중해 연안에 존재해 왔다. 출애굽과 가나안 탈취의 성서적 일화에서 보듯 화성인들은 목적 달성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폭력적인 모습을 보여 왔다. 그런 이미지는 H.G 웰즈의 ‘화성침공’에 이르는 현대에까지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셋째는 화성인들의 사상이 인간 본연의 욕망에 충실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힘을 숭상하며, 힘이 곳 법이라고 주장한다. 이집트 파라오 왕조와 성서의 율법과 언명에서 이런 사실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힘있는 자가 지배하는 세상이 그들에게는 당연한 것이며, 권력의 추구와 유지는 존재의 필연이다. 한편 그들이 세운 윤리와 룰을 어긴 자에게는 ‘돌로 쳐죽이는’ 수준의 잔인한 징벌이 따른다.
놀라운 것은 이런 사상이, 거기에 저항해야 마땅할 피지배계급까지도 세뇌시킬 정도로 파급력과 힘이 있다는 것이다. 범지구적으로 여기에 대항하는 사상이 굵은 흐름으로 형성된 것은 근대 이후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 자본주의 역시 피지배계급에게 헛된 환상을 주입하며 유사한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처럼 인류문명의 주류를 이끌어가던 화성인의 사상과 문화에 행성 Z는 어떻게 대항했을까?
바로 비밀결사를 통해서다.
18세기에 유럽 사회의 전면에 등장한 프리메이슨(Freemason)은 원래 스코틀랜드에 기반을 둔 석공들의 조합이었다. 그러나 일개 석공조합이 런던에 그랜드 랏지를 개설한지 불과 20년만에 유럽 전역에 126개의 지부를 거느리게 되고, 수많은 명사들을 회원으로 가입시킨다.
그렇게 가입한 회원들 중에는 아래의 인물들이 포함된다.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 하이든, 리스트, 시벨리우스, 괴테, 키플링, 코난 도일, 마크 트웨인, 오스카 와일드, 푸시킨, 볼테르, 실러, 맥아더, 나폴레옹, 에펠(에펠탑 설계자), 헨리 포드, 극지 탐험가 피어리와 스콧, 재즈 피아니스트 오스카 피터슨, 카운트 베이시, 듀크 엘링튼, 냇 킹 콜, 우주비행사 존 글렌, 마술사 후디니, 조지 워싱턴과 루즈벨트, 트루먼을 포함한 18 명의 미국 대통령들, 다섯 명의 영국 왕들과 윈스턴 처칠을 포함한 여섯 명의 영국 수상들, 골프 선수 아놀드 파머 등등
18세기 초는 아직도 기독교의 영향력이 막강하던 때다. 그런데도 종교와 무관하게 가입이 가능하고 (다만 Supreme Being, 즉 초월자를 인정해야 함) 이단의 냄새를 진하게 풍기는 이 단체는 한번도 박해를 받아본 적 없이 오늘날까지 승승장구 하고 있다는 점은 그들의 숨은 힘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이 프리메이슨의 바탕은 바로 유명한 성당기사단이다. 십자군의 일원으로 예루살렘에 100년 가까이 주둔해 있던 성당기사단은 순례자들에게 돈을 빌려 주며 막대한 이익을 챙겼고, 한때 전 유럽에서 가장 큰 가톨릭 조직으로 발전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사실 그들이 100년 가까이 예루살렘에서 한 일은 주로 솔로몬 성전을 파헤쳐 기독교의 유물들을 찾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솔로몬 성전에 있어야 했던 가장 중요한 유물이 바로 모세의 성궤였다. 솔로몬 성전 자체가 성궤를 안치하기 위해 지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솔로몬 성전 복원도
성당기사단이 성궤를 발견한 것 같지는 않다. 그랬다면 그 자체로 기독교 문명을 뒤흔드는 일대 사건이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험 핸콕은 저서 ‘신의 암호’에서 이미 솔로몬 왕의 시기에 성궤는 시바여왕의 땅 이디오피아로 빼돌려 진 것으로 추론하고 있는데, 여하튼 성당기사단이 이곳을 점령한 12세기경에 성궤가 없었던 것은 분명하다.
성당기사단의 본거지였던 알 악사 모스크. 솔로몬 성전이 붕괴된
후 그 자리에 세운 것으로, 지금은 이슬람 사원이 되어 있다.
솔로몬 성전의 지하이자 이곳의 지하에는 많은 유물들이 숨겨져
있다고 믿어져 왔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성당기사단이 고대로부터의 유물과 비밀들을 찾아냈을 가능성은 적지 않다. 물론 여기에 있던 것들은 대개 유대교, 즉 화성문명의 것들이었다. 허나 100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그것들을 들여다보고 해석하면서, 또 인도나 이슬람, 불교 등 동방의 다양한 종교와 접하면서 조금씩 새로운 사상을 키워나가게 되었을 것이다.
예루살렘이 살라딘에 의해 함락된 후 유럽으로 돌아온 성당기사단은 ‘바포멧’이란 염소머리의 신을 섬기게 되는데, 이 이름은 원래 12세기 유럽의 시에서 마호멧(무하마드. 이슬람교의 창립자)을 잘못 표기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던 것이 성당기사단에 의해서 새로운 형태의 신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거다.
바포멧은 이후 유럽에서 악마(Devil, Satan)등과 같은 존재로 여겨지게 되고, 위와 유사한 그림들이 사타니즘의 상징으로 회자되었다. 그러나 선입견을 버리고 보면 이 형상은 다양한 여러 가지의 의미를 담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먼저 바포멧(마호멧)이란 이름은 이슬람교의 영향에서 온 것임에 분명하다. 거기에 유태교적인 별을 이마에 붙이고 천사의 날개를 하고 있고, 앉은 자세와 손의 위치, 가슴의 유방 등은 불교와 힌두교 등 인도 계통 종교의 영향이 드러난다. 가장 이질적인 염소 머리의 경우는 다양한 종교에서 공통적인 ‘희생 제물’ 로서의 염소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영어로 희생양은 scapegoat 이라고 부른다. Goat은 염소라는 뜻).
이렇게 보면 일견 섬찟해 보이기도 하는 이 그림이 실은 다양한 종교의 통합을 상징하는 존재를 표현한 것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성당기사단은 단순히 이렇게 생긴 마귀를 숭배한 게 아닌 거다.
거기에 위의 그림을 보면 알 수 있듯 바포멧의 그림에는 달이 같이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위에서는 왼쪽 위와 오른쪽 아래에 두 가지 형태의 반달이 그려져 있다. ‘달’은 당연히 행성 Z의 상징이다.
이렇듯 성당기사단은 100년간의 예루살렘 생활과 발굴 속에서 중세 기독교 도그마의 한계를 절감하게 되었고, 화성 및 행성 Z에 대한 지식과 이슬람 인도 등 다양한 문화권의 종교를 종합하여 자신들만의 새로운 사상을 엮어낸 것이다. 그럼으로서 화성계 문화가 지배하고 있는 중세 기독교계에 영향을 미치려 했을 것이다.
14세기 초 프랑스의 왕 필립 4세가 유럽 전역에서 강성했던 성당기사단을 일시에 검거하고 고문, 화형 시켜 전멸에 이르게 한 것은 바로 이런 맥락과 관련이 있다. 이 피의 대숙청에서 살아남은 성당기사들이 유럽의 변방인 스코틀랜드와 포르투갈로 숨어 각각 프리메이슨과 그리스도 기사단(모험가 바스코 다 가마가 소속되었던)이 된 거다.
르네상스와 프랑스 혁명, 유럽 근대의 발흥에도 배후로 관계한 것으로 지목받고 있는 프리메이슨은 그런 작업을 통해 자신들이 드러내놓고 활동할 수 있는 시대적 상황을 스스로 창조해 냈을 것이다. 근대가 프리메이슨의 작품이라는 점은 프랑스 혁명 당시 지도자였던 로베스피에르가 대놓고 프리메이슨 색체가 농후한 종교 행사를 벌였다는 점과, 비슷한 시기 공화국으로 태어난 미국의 초대 대통령 워싱턴이 33도 고위 프리메이슨이었다는 점을 통해 드러난다.
1867년에 제작된 조지 워싱턴의 석판화.
프리메이슨의 상징이 그려진 앞치마와
흙손 등을 들고 있다
미국 1달러 지폐에 그려진 워싱턴과 뒷면의 피라미드.
전편에 언급했듯 피라미드는 화성과 행성 Z의 공통적인
상징이다. 고로 초고대 지구의 상징이기도 했을 것이다.
미국의 워싱턴 기념탑. 1885년 완성. 높이 170미터.
총무게 9만 854톤의 당시로선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의 건축물이다. 이집트 오벨리스크의
복사판인 이 형태가 어째서 워싱턴 기념탑이 되어야
하는지는 프리메이슨 ? 성당기사단 ? 솔로몬 성전-
모세 ? 이집트 ? 화성/행성Z 라는 연결점이 아니면
설명될 수 없다.
현재까지 미국의 상징 역할을 하는 자유의 여신상
은 프랑스 프리메이슨이 미국 프리메이슨에 선물로
보낸 것이다. 위 엽서에는 자유의 여신상을 설계한
Frederic Auguste Bartholdi 의 초상이 인쇄되어
있는데, 중간에 프리메이슨의 자와 컴퍼스 마크가
확연히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그림자정부’ 라며 두려워하는 프리메이슨의 활동이 실은 중세 기독교의 정신적 물리적 지배를 극복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점에서, 설사 현재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한들 그 본래 성격은 화성이라기 보다는 역시 행성Z에 가까운 것이다. 물론 어느 시점 이후 퇴색되거나 오염되었을 가능성도 없지 않지만…
이렇게 화성과 행성 Z는 지구상에서 자신들의 정치적, 사상적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렇다면 그들이 이토록 지구에 집착하는 이유는 뭘까. 아니, 애당초 지구와 화성, 행성Z는 어떤 관계였을까.
수만 년 전 태양계에 존재했던 위대한 제국… 그 모습은 어떤 것이었을까.
To be continued
외계문명과 인류의 비밀 Chapter 13
…지난 시간에 지구와 화성, 행성 Z의 관계에 대한 의문으로 끝을 맺었었다. 글타. 이들은 원래 어떤 종족이고 어떤 사이고, 또 왜 싸우게 되었나.
허나 그 이야기에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전에 우리 인류의 기원과 인류 문명의 과거에 대해 먼저 좀 생각해 보자.
고인류학의 정설은 지금의 원숭이, 고릴라 등의 조상인 영장류가 인간 전 단계의 존재인 호미니드(오스트랄로 피테쿠스 등)로 진화하고, 그것이 다시 인간의 특성을 더욱 많이 가진 호모 (호모 에렉투스, 호모 사피엔스 등)로 진화해서 지금에 이르렀다는 입장이다. 호미니드의 출현은 2~3백만 년 전, 호모의 출현은 170만년 전, 대략 이렇다.
그리고 호모 사피엔스 네안데르탈렌시스, 즉 최초의 호모 사피엔스인 네안데르탈인이 출현한 것은 대략 35만년전으로 이들이 구석기시대를 꽃피웠고 지금 우리들의 직계 조상이자 우리가 속해 있는 종인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즉 크로마뇽인은 약 5만년 전인 후기 구석기 시대에 나타나 신석기 시대를 열고 오늘에 이른 것으로 알려진다.
깔끔하고 일목요연한 설명이나, 문제는 고인류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심각하고 만성적인 증거부족 현상에 시달리고 있다는 거다. 유명한 타웅 베이비나 리처드 리키의 1470, 도날드 요한슨의 루씨나 최초의 가족 화석을 포함해 전 세계에서 발견된 모든 원인/인류 화석을 모아 놓은들 커다란 탁자 위에 다 쌓아놓을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이건 결국 발견된 화석들의 특징이 각 시대와 종의 보편성을 담보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예컨대 100만년 전 지층에서 단 하나의 두개골이 발견되었다면 그게 100만년에 살았던 호모 에렉투스 종의 평균적인 형태라고 말할 수 있을까? 특별히 머리가 크거나 작거나 주걱턱이거나 얼굴이 쥐 형태로 변하는 질병을 앓았을 수도 있는 거다. 고인류학의 성과를 완전히 무시하자는 뜻이라기 보다는, 이렇듯 빈틈과 한계가 많다는 소리.
이 정도 전제해 두고 아래의 것들을 함 보자.
공룡에 대해 조금의 지식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위의 파충류들이 단지 용 같은 상상의 존재나 현생 도마뱀, 악어 등을 표현한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을 거다. 맨 위는 트리케라톱스와 오리너구리 계통 공룡, 그 아래도 트리케로톱스, 그 밑은 브론토나 브라키오사우르스 류의 뇌룡, 맨 밑은 티라노나 알로 사우루스, 벨로시렙터 계통의 육식공룡으로 전문가라고 할 수 없는 우원도 한눈에 알아볼 정도다.
허나 인류 문명에 공룡의 존재가 알려진 것은 19세기 화석을 발굴하면서다. 따라서 그 상식에 기초한다면 위의 정확한 그림과 모형 등은 공룡이 세상에 널리 알려진 이후에 만든 작품이어야 한다. 그러나 실은 위 공예품들은 2,3천년의 페루 잉카 등지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상당수의 그림과 모형에 인간이 함께 등장한다(위에 소개한 것 외에도 수십개가 더 있다).
학계의 정설에 따르면 당시의 인류는 공룡의 모습을 알아서는 안되는 거니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7천’만’년 전에 멸종한 걸로 알려진 공룡이 실은 2,3천년 전까지 인간 주변에서 저렇듯 어슬렁거리고 있었던 걸까. 아니면, 인류 종족이 우리 생각보다 더 오래되었고 공룡은 늦게까지 살아남아 그 교집합의 시대가 존재했던 걸까. 그렇다면 저 그림과 공예품들은 아득한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작품들의 복제본일지도 모른다.
이는 인류의 기원과 문명이 어쩌면 우리가 알던 것보다 훨씬 더 오래되었을지 모른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그런 점은 얼마 전 선보인 초고대의 물체들을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머 굳이 다시 예를 들지 않더라도, 지금까지의 논의 속에서만 봐도 초고대 지구에 발달된 문명이 있었다는 사실에는 별다른 이론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 시리즈의 논의를 통해 대재앙, 즉 초고대 문명의 종말이 언제 닥쳤는지 알고 있다. 그것은 기원전 10.500년 경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또 하나의 질문이 생겨난다.
그 문명은 과연 얼마나 오래 전에 시작된 것일까…?
위 피리 레이스의 지도(16세기 작)에는 당시
탐험가의 손길이 닿지도 않은 아프리카
서해안과 남아메리카 동해안, 그리고 19세기에
발견된 남극대륙의 해안선까지 그려져 있다.
그런데 이 지도는 터키의 제독이던 피리 레이스가
작성한 것이 아니라 고대로부터 전해오는 지도를
베낀 것이다.
지난 8편에서 우리는 이런 것들을 살펴 보았다.
수 만년 전 원시인들에 의해 그려진 이 벽화의 인물들은 분명 당시의 일반인들과는 전혀 다른 특이한 존재들이다. 그래서 ‘외계인’이라고 이야깋하게 된다. 그러나 여기서 놓치기 쉬운, 그러나 아주 중요한 점이 하나 있다.
우원은 앞편들에서 외계 우주선들이 먼 은하계 너머에서부터 지구에 숱하게 날아올 리가 없다는 점을 들어, 현재 지구상에 나타나는 UFO들은 대부분 화성인과 행성 Z인의 것이라는 주장을 폈었다. 그렇다고 가정해도, 지구와는 다른 별의 생물인 그들이 모두 저렇게 두 다리와 두 팔, 하나의 머리를 가진, 인간과 저리도 유사한 존재들이란 말인가?
생명의 탄생과 진화는 그 배경이 되는 공간의 특성에 철저히 지배받는다. 중력과 온도, 대기의 성분 등등에 아주 예민한 영향을 받고, 적자생존의 방향 역시 행성마다 다를 수 밖에 없다.
이넘들… 너무 인간에 가깝게 생긴거다.
실제로 우리가 외계의 지적 생물체를 발견한다면
그넘은 지구상의 어떤 생물과도 닮지 않았을 거다.
그런데 저 위 그림들의 인물들은 사지가 있는 건 물론이고 신체 비율 등 어디를 봐도 인간의 범주를 넘어서지 않는다.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되냐. 역시 조물주는 존재하고 우주의 모든 생물을 그 분의 형상을 본따 만드신 걸까?
그럴리가.
여기에 대한 합리적인 답은 하나뿐이다.
저 넘들은 실은 전부 인간인 거다. 굳이 우주복 비슷한 것과 헬멧을 쓰고 있는 걸로 보아 다른 곳에서 다르게 적응했더라도 말이다. 결국 우리나 별다를 것 없는 인간들이 어딘가에 살고 있는 원시적 부족을 저렇게 방문한 거다.
그럼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어째서 다른 행성에서 온 외계인들이 인간일 수 있단 말인가.
결국, 지구인과 화성인, 행성 Z인이 한 핏줄이라는 뜻이다.
글타… 화성과 Z는 원래 지구에서 생겨나고 진화한 생명체인 인류가 개척한 식민지였던 것이다. 따라서 두 행성의 종족들은 식민지로 이주한 우리 인류의 후손이었다. 저 그림들은 그들이, 역시 발달되어 있던 지구에 일부 원시상태로 남아있던 오지를 방문한 것을 지역민들이 표현한 것 뿐이다. 지금도 그런 지역은 널려 있으니까.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 세 행성의 주민이 한 핏줄이라는 건 논리적으로 당연하다. 하나의 태양계 속에 있는 여러 행성들에서 각각 생명이 생겨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생명의 발생은 이상적인 조건하에서는 필연적일지 모르지만 일반적으로는 결코 쉬운 일이기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구와 화성, 행성 Z에 동시다발적으로 생명이 탄생하고 비슷한 진화 속도를 거쳐 같은 시점에 서로 대등한 전쟁을 치를 만큼의 과학기술 문명을 일궈냈을 가능성은 전무하다.
이게 뜻하는 바는 하나다. 이 세 행성의 문명은 하나의 뿌리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뿌리는 지구다. 그것은 지구에서 생명이 만들어지고 인간이 진화했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화성과 행성 Z는 수만 년 전 과거 초고대의 인류 문명이 세운 식민 행성이 되는 거다.
따라서 초고대 문명의 기원은 적어도 4,5만년, 혹은 10만년 이전의 과거로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지구에서 기술 문명이 생겨나고, 그것이 우주여행을 할 정도로 발달하고, 화성과 행성 Z 에 식민지를 건설하고, 그들이 지구에서 우주복을 입어야 할 정도로 현지에 적응하고, 지구의 깡촌을 방문해서 저 그림들이 남은 것이 이미 지금으로부터 수만년 전이니 말이다.
그럼 그 찬란했던 기술 문명의 자취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당근 대재앙 시점에서 대부분 물에 휩쓸려 갔고, 그렇지 않은 곳들이라도 땅속 깊은 곳에 묻혀있다. 2천년 전의 로마 유적지도 현대 로마보다 9미터 아래에 있다. 불과 2천년의 세월이 이러할진대 수만년 전이라면 그 남은 잔해들은 모두 땅속 100미터 이상의 깊은 곳에 돌덩어리들로 남아 있을 거다…
암튼, 이 문명은 지구를 중심으로 한 식민지 연방으로 발전해 갔지만 다시 수천 년 세월이 지나면서 화성과 행성 Z 는 독자적인 문명을 발전시켜 갔고, 지구의 통제력과 구심력은 서서히 약해졌다. 그러면서 화성은 군사력과 독재를 기반으로 한 전쟁 문명으로, 행성 Z는 예술과 문화를 중시하는 리버럴한 문명으로 커 갔다.
그 과정에서 지구는 연방의 고향으로서 상징성만을 남겨 둔 채 쇠퇴했고, 이런 특성으로 전체주의적 화성보다는 행성 Z 와 보다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던 거다.
그렇다면 화성과 행성 Z 간의 전쟁은 왜 일어났던 걸까.
그저 추측만이 가능할 뿐이다. 그러나 아마도 지구의 쟁탈권을 두고 벌인 전쟁이 아니었을까. 지구에서 중요한 자원이 발견되었을지도 모른다. 예컨대 석유나 석탄 등은 거대한 양의 생물의 사체가 수억 년의 세월이 지나며 변이된 것이기 때문에 화성이나 행성 Z 에는 존재할 수 없었을 지도 모른다.
아니면 말 그대로 지구를 정복하기 위해서일 수도 있다. 화성과 행성 Z의 자연은 물이나 공기가 있었다 한들 지구의 사막 수준으로 척박했을 것이다. 모성 지구의 힘이 약해지면서 그들이 아름다운 자연을 가진 지구를 자신들의 소유로 만들기 위해, 아마도 화성이 지구와 관계가 깊었던 행성 Z를 쫓아내고 지구를 독차지하기 위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나 외의 다른 신을 섬기지 마라’, ‘나는 질투하는 신이다’ 라는 성서의 언명은 지구와 연관이 깊었던 행성 Z에 대한 화성인들의 뿌리깊은 시샘을 나타내는 것은 아닐까.
혹은, 어쩌면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바로 정통성이다.
조조(曹操)
후한(後漢)말의 중국은 위 촉 오의 3개 나라로 나뉘어져 있었다. 제갈량의 ‘천하삼분지대계’에 따르면 이를 정족지세(鼎足之勢, 솥발의 지세)라고 하며 세 세력이 어느 한쪽도 절대 우위를 차지하지 못한 채 서로 대립하는 형국을 의미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촉과 오의 힘을 합쳐본들 위의 그것에 미치지 못했다. 그 결정적인 이유는 위의 조조가 황실을 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린 헌제를 꼭두각시로 내세운 조조는 나라의 군대를 직접 움직이고, 황명을 빌어 자신의 뜻을 관철시켰다. 황실이 존재하는 한, 외형적으로나마 한(漢)의 신하였던 손권 유비 등등은 조조의 계략임을 알면서도 헌제의 직인이 찍힌 칙령을 마냥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만약 화성과 행성 Z가 이런 류의 정통성을 노렸다면, 그 당시 지구에 비록 힘은 없어도 황제의 권위를 가진 인물이 존재했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전에는 실제로 강성한 제국이 번성했을 거다.
그 제국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인류 문명의 바탕의 바탕이 된다. 우리가 석기시대라고 알던 시절에 그들은 이미 위대한 과학 문명을 건설했고, 급기야 가까운 두 행성으로 진출했으며, 그 결과 지구를 포함한 세 개의 행성을 거느리는 거대한 태양계 제국으로 발전해 갔다.
그 중심에 바로 황제가 있었다.
‘단군’이 개인의 이름이 아닌 대를 이은 직위이듯이, 태양계 제국의 황제도 이름이 아닌 직위로 불렸다. 그가 가진 엄청난 권력과 힘, 기술은 생명을 살리고 죽임은 물론 명을 어긴 인간을 내쫓을 수도, 타락한 도시 전체를 불태울 수도 있었다. 특히나 위에 묘사한 당시의 ‘원시부족’이나 일반인들에게 그는 두렵기 그지 없는 신과 같은 존재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상상이지만 그런 황제와 제국이 쇠퇴하게 된 계기는 신하들이 반란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권력과 지식의 독점 및 전횡을 보다 못해 일반인들에게 그 비밀을 나눠주려 했던 그들은 황제의 진노를 사게 되고, 고문과 추방에 처해진다.
그 과정에서 제국의 구심점은 붕괴되고, 화성과 행성 Z는 각자의 길을 가게 된 거다. 그러면서 수백, 수천 년이 지난 후 황제는 더 이상 아무런 권력도 갖지 않은 상징적인 존재로 변하고 말았다. 그리하여 지구, 화성, 행성Z 어느 쪽도 제국의 패권을 쥐지 못하고 권력의 중심이 무주공산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화성과 행성 Z의 힘이 절정에 달했을 때, 그들은 지구를 차지하고 제국의 정통성을 확보하려 했던 것이다. 그럼으로써 자신들이 원하는 형태로 제국을 부활시키고자 했던 거다.
그러나 그 결과는 공도동망(共倒同亡). 화성과 행성 Z의 붕괴는 물론 지구까지도 대재앙의 풍파에 휩쓸리고, 태양계 제국의 영광과 초고대 문명의 기억은 영원히 깊은 우주 공간과 바다속으로 꺼져버리고 말았던 거다.
그들이 그토록 무서워하고 또 차지하려 했던 제국 황제의 지위….
그 이름은 YHWH, JHVH, Jehovah 등으로 쓰고 야훼라 읽었다.
야훼를 나타내는 삼각형.
중간의 글씨는 히브리어 야훼.
그리하여 이 상징은 수만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지금까지도 제국을 기억하는 극소수의 선택된 자들에 의해 은밀하게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
이집트
수단
보스니아
온두라스
중국 시안
바티칸
영국
프리메이슨
미국
미국
프랑스
카자흐스탄
인도
그리고 반란을 일으켜 황제의 권력을 일반인과 나누려 했던 신하들은 ‘빛을 가져오는 자’, ‘먼저 깨우친 자’ 등의 이름으로 불렸다.
이를 원어로 표기하면 루시퍼, 프로메테우스가 된다…
To be continued
여기가 기본적으로 완결이다. 에필록가 2개 더있는데 별 내용 없고 영화화 하는 이야기 그런 것들.
링크만 해놓도록 하겠다.
예전에 너무 재미있게 보았던 글인데 딴지일보에서 이미 사라지고 없어서 어렵게 구해서 올려 봅니다.
딴지 일보 http://www.ddanzi.com 에 연재 됐던걸
탱(Taeng’s Blog)의 블로그 http://devilishfire.blog.me 에서 퍼옴
2011년에 책으로도 발간되었는데 현재 수급상황이
여의치 않아 새로운 출판사를 물색 중이다.
사진은 우원의 책을 들고 포즈를 취한 봉모 감독.
구매를 원하시는 분은 여기로…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702345
파토님 재미있는 글 감사드리고 저작권에 문제가 있으면 조치 하겠습니다.